[염주영 칼럼] 산으로 간 김영란법
국회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물타기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 김영란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켜보는 국민의 눈이 무섭다. 이럴 때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서 엉뚱한 사람들을 물고 늘어지면 된다. 국회는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무관한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들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묘수를 찾아냈다.
예상은 적중했다. 법을 통과시키자마자 언론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국회의원들은 한 발 물러나 "위헌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과시켰다"고 군불을 땠다. 급기야 여기저기서 변호사도 넣고 의사도 넣자는 얘기가 나온다. 한 발 더 나가면 은행원, 회계사, 법무사, 세무사, 약사, 간호사도 넣자고 할 법하다. 공인중개사, 운전기사, 노무사, 요리사는 왜 빼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물타기 전략은 대성공이다.
새누리당은 법안을 통과시킨 방망이 소리가 그치기 무섭게 법을 다시 개정하겠다고 했다. 또 대한변협은 국회 통과 이틀 만에 헌법소원까지 냈다. 김영란법은 점점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위기 의식을 느꼈을까. 이 법의 최초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방어에 나섰다. 그런데 회견 내용이 너무 예상 밖이다. 그는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적용 대상에 넣은 것이 위헌논란을 빚고 있는 데 대해 "국민 69.8%가 지지하니 위헌이 아니다"고 했다. 또 "적용 범위를 모든 민간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순간순간 바뀌는 것이 여론이다. 법률 전문가가 위헌 여부를 여론으로 판단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 법이 여론의 지지를 받아서 고무된 나머지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가. 전직 대법관이 아니라 정치인 김영란을 보는 것 같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내린 극약처방과 같은 것이다.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뇌물이 아니어도 처벌하는 것이 이 법이다. 범죄가 아닌 것을 죄로 보고 처벌하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을 만든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직사회에서 부패를 척결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극약은 잘 쓰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아무 데나 함부로 쓰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김영란법이 당초 적용 대상을 공직자로 제한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 법의 최초 제안자의 말이 인기성 발언으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직자는 국가의 권력과 재산으로 국민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는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도덕성과 청렴성 요구를 법에 담은 것이 김영란법이다. 회사가 부패하면 회사가 망하는 것으로 그만이지만 공직사회가 부패하면 국민이 괴롭고 나라가 불행해진다.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이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국회의 물타기 전략이 비난받아야 할 것은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이라는 대의를 위헌성과 형평성 논란으로 변질시킨 점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에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끼워 넣은 것은 비유를 하자면 김씨 문중회의에 이씨를 불러 앉힌 것과 같다. 장관 차를 모는 운전기사가 이 법을 적용받으니 시내버스 운전기사도 적용해야 한다는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본질적인 차이를 덮어두고 형평성의 잣대만 들이댄 결과다. 정부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올가미를 갖게 됐다. 이완구 총리가 후보자 시절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 왠지 실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기자들도 한번 당해봐."
[email protected] 염주영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