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사 변호사 선임, 선택에 맡겨야
본인 또는 가족이 소송을 당했지만 변호사 선임비가 부담돼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사례는 전체 민사소송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화된 지 오래다. 특히 소송가액 2000만원 이하 소액사건의 경우 쟁점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등의 이유로 나홀로 소송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과 권력기관을 상대로 수십 차례 직접 소송을 제기한 A씨는 법원 내에서 유명인사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A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법조인은 아니다. 그가 직접 작성한 소장과 변론기술을 접했던 판사들은 '초짜 변호사' 이상의 수준이라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중국집 배달부가 보험사에서 제시한 수십만원의 보험금 지급액이 터무니없다며 나홀로 소송을 통해 수천만원을 지급받은 사건은 법조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이러한 '숨은 고수'들의 경험담을 더 이상 듣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국회에서 민사소송을 형사소송처럼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논의 중이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진해온 이 제도는 지난해 말 새누리당 윤상현.홍일표 의원이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법제화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개정안은 민사사건에서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사람은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으면 소송행위를 할 수 없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상고장을 각하하도록 규정했다. 변호사 업계는 충실한 재판 심리와 당사자의 변론권 보장을 위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사적인 영역에서 국가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엄연히 소송 당사자가 민사소송에 대한 결정권과 선택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법조계는 변호사 선임 여부를 기준으로 소송수행 여부를 결정짓고자 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가령 수백만원의 채권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위헌 논란을 떠나 적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불필요하게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아 업계가 불황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논하기 전에 변호사에 의한 소송대리가 외면당하고 있는 원인을 먼저 찾고 법률서비스 개선을 위한 묘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mail protected] 조상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