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또 다른 업적

















태평성대로만 기억되는 세종시대, 사실 백성은 흙을 파먹을 정도로 피폐했었습니다.

세종 즉위 이후 10년 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가뭄에 백성은 배고픔에 신음하고 농업은 황폐화됐습니다.

이는 조선 국가 경제의 위기였습니다. 세종은 10여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고민했습니다.

“농업을 살리고 백성을 구제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세종은 우선 농업생산력을 높이는데 주력합니다.

농사 경험이 풍부한 농민에게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가 있고 안 좋은 지를 묻고, 이를 가리고 중요한 점만 수집.

이 같은 ‘통계’를 바탕으로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한 ‘농사직설’(1429년 세종11년)을 편찬합니다

‘농사직설’의 보급은 농업의 과학화와 농업생산력 증대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세종 후대 토지 1결당 300두(말)였던 수확량은 최고 1200두(말)로, 무려 네 배나 증가하게 됩니다.

가뭄도 그에겐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습니다.

비를 내리게 할 방법은 없으니 “비가 언제 얼마큼 오는지 알 수는 없을까?”

이러한 여망이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측우기 발명은 조선에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전국의 강우량을 측정하고, 지역별로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내리는 시기 등 ‘통계’를 축적하니 강우량을 예상해 농업에 적용할 대비책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했습니다.

세종은 조세제도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부자는 세금을 덜 내고 가난한 자는 더 내는 당시의 세법은 백성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에 세제 개혁을 단행합니다.

세종은 고심 끝에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을 제시하고 백성의 지지를 받는 세제 개혁을 위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실방가부이문(悉訪可否以聞)“모두를 방문하여 가부를 물어라">

5개월간의 여론조사 결과 ‘여론조사 결과 찬성 57%, 반대 42%’

하지만 세종은 반대가 예상보다 많다는 이유로 시행을 보류합니다.

세종은 공법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논의·개선해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으로 확정, 여론조사 14년 만에 공법을 시행(1445년, 세종 26년)

공법시행 후 백성들의 조세부담이 토지 한 결당 30두(말)에서 최하 4두(말)로 현저히 가벼워졌습니다.

세종은 철저한 데이터 조사, 수집, 분석을 통한 ‘국가통치’, 농업전문가의 경험·지식을 통계로 집대성한 ‘농사직설’, 강우량을 통계 내 백성의 농사를 도운 ‘측우기’, 백성들의 여론을 반영한 ‘세제 개혁’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세종은 통계의 힘으로 농업을 일으키고, 백성을 구제하는 애민 정책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 관련기사 ☞ 역사속 통계의 영웅을 찾아서

[카드뉴스] 통계로 세상을 구한 ‘엄친딸’

[카드뉴스] 신에게는 ‘점고’가 있습니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 이대성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