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터 학교·시민단체까지 얌체고용에 두번 우는 '乙'
퇴직금 안주려고.. 11개월씩 쪼개 계약하고
주휴수당 안주려고..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무 조정
퇴직금과 주휴수당 등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얌체계약'을 하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다.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을 하고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 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뿐만 아니라 학교, 시민사회단체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당 고용주들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현행법상 이런 계약이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물짓는 계약직 근로자
A씨는 기간제 교사다. 올해 서울의 한 사립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학교와 3월 2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계약을 맺었다. 날짜로 환산하면 364일이다.
7일 현행법에 따르면 A씨는 계약이 끝나더라도 학교로부터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해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사실상 1년짜리 계약이지만 365일을 다 채워서 계약하는 학교는 찾기 어렵다"며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계약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불법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의 한 사립학교에서 시간강사로 근무 중인 B씨 역시 학교 측의 얌체계약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교 측이 한 주 근무시간을 14시간으로 조정하자고 나섰기 때문이다. B씨는 "처음 16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주휴수당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14시간으로 조정되더라. 약자들의 근무여건이 열악해지는 것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법인, 시민·사회단체끼지 만연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아끼기 위한 고용주는 학교뿐만 아니다. 기업은 물론 재단법인과 시민사회단체도 이런 계약을 서슴지 않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 기념관에서 도슨트(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로 근무했던 C씨도 이 중 한 명이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는 그는 계약기간이 11개월이라는 사실을 알고 퇴직금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같은 유명 재단법인조차 11개월짜리 계약을 하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지만 당장 일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바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례는 일부에 불과해 근로자에게 지급할 경비를 아끼기 위해 제도의 허점을 적극 활용해 계약하는 현상이 만연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당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근로자들도 보호받지 못하는 1년 미만 임시직이나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1년 미만 임시근로자는 지난 2013년부터 3년째 증가해 지난해 508만여명에 이르렀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기업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간제 근로자는 퇴직금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이번 노동개혁안에 이 부분이 빠지게 됐는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초단시간 근로에 대해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늘고 근로자가 2, 3개씩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데다 계약서와 달리 연장근로하는 경우도 있어 보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피플 천광우 노무사 역시 "퇴직금은 1년이 지나야 발생하는데 11개월만 계약한 뒤 이후 재계약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며 "얌체계약이지만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계약 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mail protected] 김성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