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시장 감시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게 하자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2 17:28

수정 2016.05.22 17:28

[데스크 칼럼] 시장 감시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게 하자

최근 만난 모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요즘 마치 부실기업 발생이 엉뚱하게 자신들 때문인 것처럼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며 하소연부터 했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부실화는 우리 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회계사나 애널리스트들이 먼저 경고등을 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분석하고 경고음을 냈다면 우리 경제가 또다시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는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회계사들도 할말은 있다. 일 잘하는 회계법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가 싼 회계법인을 찾는 기업들 그리고 그들이 부실을 감추고 주는 자료로 어떻게 경고등을 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는 을도 못되고 병이라며 자괴감을 드러낸다. 인력이탈로 사기마저 꺾였다고 걱정했다. 또 금융당국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하에 기업공시제도를 완화해 주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투자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기업회계를 더 깐깐하게 볼 수 있도록 공시제도를 더 강화해야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갑을 관계로 형성돼 있는 시장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약자, 특히 갑을 관계에서 을이 '노(NO)'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우리는 갑을 관계에서 야기된 수많은 불합리한 모습을 지켜봐 왔다. 3년 전 남양유업 직원의 갑질로 알려진 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등 약자를 위한 제도개선이 이뤄졌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집단인 애널리스트나 공인회계사들도 소신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교보증권의 애널리스트가 하나투어에 대해 부정적 보고서를 냈다가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나투어로서는 신사업인 면세점 사업에 대해 정확한 데이터도 없이 부정적 보고서를 낸 것이 불쾌했을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공동성명서를 내는 등 강력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만일 상대가 중견기업인 하나투어가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었다면 이런 단체행동이 가능했겠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팩트(사실) 그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고 분석보고서를 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금융감독원,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금융투자협회 4자 간 정기협의체가 만들어진다. 상장사들은 떳떳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애널리스트는 리포트의 객관성을 분명히 하자는 취지다.

이런 협의체가 만들어져 기능을 발휘하고 활성화된다면 애널리스트는 엉터리 분석보고서를 만들 수가 없다. 상장기업들도 부실을 숨긴 자료를 넘기기 힘들어진다.
최근 일부 연기금은 경영이 투명하지 못한 기업의 주식은 사지 않기로 했다.

우리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회계법인이나 애널리스트, 신용평가 같은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갑에게 을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 갑은 을을 파트너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 증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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