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투명성을 높여라(1)] 기업들 회계투명성을 비용으로 생각.. 회계절벽 초래
제도 바꿔도 나아지지 않는 기업투명성
회계투명성 후진국.. 회계감사 인식수준 형편없어
대기업 감사보수도 글로벌기업에 비해 턱없이 적어
금융당국, 개선안 만들었지만 기업 반발하자 완화
기업의 투명성 제고는 금융당국과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이 갖고 있는 오랜 숙제다. 지난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내부감사제도 강화 등 제도나 규제가 강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 그리고 부실회계 논란은 기업 분식회계나 부실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다시 제기되면서 '백약이 무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감사 과정에서 부실을 적발하지 못한 회계법인의 책임도 있겠지만 기업 부실회계의 책임을 회계법인에만 떠넘기려는 금융당국과 아직까지도 외부감사를 짐으로만 인식하는 기업의 인식 부족이 기업 회계투명성 제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등 수주산업 기업의 대규모 손실 인식으로 이른바 '회계절벽'이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은 '수주산업 회계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원가공개에 따른 해외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기업들의 반발에 원안에서 후퇴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공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해당 기준과 책임을 완화해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가 담당 기업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기업 회계부실의 근본적인 원인과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기업투명성이 10년 넘게 꼴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정부, 기업, 회계법인 등 이해관계자들의 인식 부족 때문이란 지적이 나왔다. 기업투명성 제고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미온적 대응을 보이는 금융당국과 어쩔 수 없는 짐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업, 감시자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회계법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회계투명성 꼴찌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제도개혁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이다.
외국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의 재무제표를 이해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IFRS 도입 결정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법률개정과 제도개선을 통해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도입했고, 감독기관의 감리제도도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회계투명성은 여전히 세계 꼴찌 수준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지난 2011년 47위에서 지난해 60위로 떨어졌다. 조사 대상국가가 60여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최하위권이다. 세계경제포럼(WEF) 기준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2011년 96위에서 올해 72위로 올랐다. 얼핏 보면 회계투명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73위가 아프리카 케냐였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 회계투명성은 후진국 수준이다.
■감사보수 턱없이 낮아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회계감사에 대한 인식 부재라는 지적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감사보수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감사보수는 글로벌 경쟁사 대비 턱없이 낮은 게 사실이다. 수년째 국내기업의 감사보수는 변동이 거의 없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의 감사보수는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일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개 코스피사의 감사보수를 총 소요시간으로 나눈 시간당 보수는 평균 8만631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감사업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감사보수는 36억9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동결됐고 2012년과 비교해서는 30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자로 꼽히는 애플은 지난해 감사보수가 1305만900달러다. 환율 1100원을 적용했을 때 143억5599만원으로 삼성전자의 3배를 훌쩍 넘는다. 애플의 감사보수는 지난 2012년 745만9300달러에서 3년 만에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자동차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의 지난해 감사보수 16억5000만원은 미국 포드(4150만달러)의 27분 1에도 못 미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회계투명성을 제고한다고 해서 얻는 것은 없고 비용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의 감사를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법 준수 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미온적 대응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관련, 금융당국의 미온적 대응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주산업 회계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반발에 결국 원안에서 후퇴한 개선안을 내놓게 됐다. 제도 시행만으로도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낮추는 등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당초 기대했던 수준의 공시는 물 건너간 셈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기업들의 활력 제고를 위해 공시규제를 대폭 완화키로 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개선안은 공시 부문에서는 자본금 변동, 전환사채 변동, 자기주식 현황 등 정기보고서 작성 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투자설명서의 활용도를 높이며 공시우수법인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대책이 포함돼 있다. 기업의 부담은 줄겠지만 신용평가사, 회계법인, 투자자 등 정보이용자는 이로 인한 불편이 불가피하다.
회계 부문의 경우 상장 예정기업의 과도한 감사보수 부담을 완화하고 감사인 지정사유를 개선하며 감사인 중도지정에 따른 불편을 해소하고 지정감사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2014년 기준 비상장사의 평균 감사보수는 2300만원이었다. 3배라고 해야 7000만원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의 평균 자금조달 규모는 208억원이다. 코스닥 상장 시 자금조달 규모를 감안하면 감사보수가 높다고 볼 수 없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계사는 "상장 예정기업의 경우 비상장사와 비교해서 정밀한 감사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게 당연하다"면서 "감사인을 복수로 지정해 가격을 경쟁하도록 한다는데 이는 지정감사의 독립성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해당 기업에 부실이 발생했을 때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기업에 부실이 발생하면 기업의 재무 등 담당자보다 회계법인에 더 큰 책임을 묻는 것 같아 아쉽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김영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