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대 역행하는 극기훈련 기업연수 여전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해병대 캠프, 행군 등 올들어 30% 이상 증가
다쳐도 산재보상 안돼
권위주의 기업문화 체험..신입사원들 허탈감 느껴

'해병대 캠프' '무박 2일 30km 행군' '지리산 종주'

군대가 아니다. 기업 연수에서 이뤄지는 극기훈련으로, 대상은 신입사원들이다. 양복 대신 땀에 젖은 군복을 입은 이들은 울상이다. 각종 군대식 훈련 뿐만 아니라 장기자랑 준비, 기업사(史) 공부 등 쉴 새 없는 일정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근대적인 연수문화가 글로벌화, 창조 인재 육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캠프 관계자도 말리는 '극한훈련'

18일 기업연수업계에 따르면 올해 해병대 캠프, 장거리 산행 등 극기훈련식 기업연수 문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늘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신입사원 연수로 이달 말 무박 2일 30km 행군을 계획했고 BGF리테일은 지난 9일부터 3박 4일간 호남의 한 해병대 캠프에서 연수를 진행했다. 또 대한전선은 지난 3월과 5월 신입사원 포함,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서해 해병대캠프 연수를 다녀왔다. 한 해병대캠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바다입수 등 극한 훈련을 주문해 대원들이 말리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극기훈련이 '팀워크'를 향상시킨다고 설명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30km행군을 하면서 정신력과 협동심을 키우고 팀워크를 만들 수 있다"며 "향후 SK하이닉스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압적.획일적인 극기훈련식 연수를 겪은 신입사원은 협동심과 애사심보다는 권위적인 기업 문화를 실감했다고 평가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신입사원 2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중 3명꼴(34%)로 '기업 연수원 교육을 받고 온 후 퇴사를 고려하거나 실제 포기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기업 문화를 확인했기 때문(26%)' '연수 기간 내내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10%)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대기업 사원 신모씨(30)는 "합숙을 핑계로 휴대폰을 수거, 연락을 끊게 하고 새벽부터 각종 군대식 훈련 등을 받았다"며 "연수 점수가 업무 배치에 영향을 준다는 소리에 입 다물고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남성 위주의 극기훈련 프로그램은 여성에게 특히 고통이다. 과거 신입사원 연수로 지리산 종주를 한 김모씨(28.여)는 "신체적인 차이가 있는데 체력테스트가 많았다"며 "부상위험이 있는데다 실패하면 낙오자로 포장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기자랑 준비, 창업주 성공신화 교육 등도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범법 행위가 미화되기까지 한다. 굴지의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A씨는 "기업 역사를 강의한 한 임원이 회장의 범죄에 대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미화해 당황했다"며 "일과가 끝나도 이같은 기업사를 공부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잤다"고 밝혔다.

■산재 불분명… 선진적 문화 도입 필요

노무법인 상생 봉성옥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원하지 않는 업무를 거부할 수 있지만 극기훈련식 기업연수는 평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반강제적"이라며 "특히 신입사원은 거부하기가 힘들어 근로자의 기본 권한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극기훈련 도중 부상이 발생해도 산업재해보상 역시 불분명하다. 한국노동자총연합회 이진광 노무사는 "기업연수는 근로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극기훈련 도중 부상은 산업재해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신입사원들은 개인주의적이고 나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극기훈련 등 기업연수를 하는 구조"라며 "구시대적 연수문화인만큼 팀빌딩 교육 등을 할 경우 기업 목표에 맞는 선진적 문화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규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