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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수익 아닌 사회성과를 측정,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지급

김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28 17:34

수정 2016.11.28 17:34

(6) 사회적 자본시장 틀을 만든다
사회적기업 거래소 만들어 상장시키면 윤리적 투자자 자금 안정적 공급
사회성과연계채권(SIB), 성과 달성땐 예산 받아 수익
미달땐 투자금 전액이 리스크.. 서울시, 아시아 첫 사업도입
사업성공으로 재투자 가능해 사회적 투자 자본 순환 기능
사회적기업 거래소, 19대 국회때 관련법안 발의
주식에 대한 대가 따질때 금융보다 사회적이익에 중점
거래소 운영주체 등 논의해야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이윤을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자본시장의 육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자본시장의 방식 가운데 사회영향투자(임팩트 투자)가 그나마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회적기업들의 욕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임팩트 투자를 제외하면 사회적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젖줄' 역할을 하는 금융 기능이 극도로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적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시장의 다양한 작동기제들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중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으로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SIB)이 꼽힌다. SIB는 기존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수혜자에게 추가적인 공적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사업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측정해 인센티브를 준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수록 이익은 증가하는 구조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거래소와 같이 자본시장의 기능을 더한 '사회적기업 거래소'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일반 기업들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처럼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가치에 투자해 성과를 내고 투자자는 수익을 증권화한 '사회적 주식'을 받는 형태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수익 아닌 사회성과를 측정,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지급


■사회성과 달성하면 수익 준다

국내에서 SIB의 시작은 서울시가 끊었다. 서울시는 아시아 도시 중 최초로 SIB 실험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팬임팩트코리아와 시내 62곳의 '아동공동생활가정(아동그룹홈)'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 및 경증지적장애 아동 100여명을 대상으로 자립교육과 관련한 SIB 사업 추진을 위해 협약을 체결했고 현재 수행기관 선정을 마친 후 프로젝트에 본격 돌입한 상태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IQ 71~84에 해당하는 학생으로, 국가에서 규정한 지적장애(IQ 70 이하)에 속하지 않아 지적장애 아동과 일반 아동의 '경계'에 위치, 각종 지원에서 제외돼왔다. 이 아동들은 비교적 약간의 도움만 있어도 사회성과 학습능력이 일반 아동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 이 아동들을 위한 지원정책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이 교육 사각지대에서 지능이 지적장애 수준까지 떨어져야 비로소 정책지원대상에 포함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서울시는 민간투자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 아이들의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전략이다.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인지능력검사와 사회성향상지표 측정을 통해 42%의 아동이 개선됐다면 완전 성공으로 민간투자자들은 인센티브를 획득하게 된다.

특히 성과목표 달성 시에만 예산을 집행하는 특성 때문에 이는 '증세 없는 복지'의 방법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목표했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민간투자자가 리스크를 모두 감당해 공적지출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자가 이익을 내고 싶으면 사회문제를 해결해내면 된다. SIB는 이런 새로운 투자 '동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곽제훈 팬임팩트코리아 대표는 "SIB를 통하면 자원이 순환되면서 더 많은 공공사업들을 할 수 있다"며 "동시에 복지사업을 미리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어 행정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대표는 "기존 공공사업들은 객관적인 성과지표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며 "SIB는 기존의 복지영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해 정부, 납세자, 수혜자에게 모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SIB의 중심축은 돈보다 '효과적인 문제해결'이며 돈은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투자에 있어 정량적인 평가와 분석은 필수다.

서울시가 스타트를 끊은 이후 경기도도 관련 운영조례를 제정하고 SIB 사업에 뛰어들었다. SIB의 시작은 영국이다. 지난 2010년 영국 피터버러시는 재소자의 높은 재범률 때문에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다시 수감된 재소자를 관리하거나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데 쓰이는 사회적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해결책을 찾던 영국 정부는 피터버러시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 세계 최초로 SIB를 도입, 사회문제는 늘어가지만 동시에 재정은 줄어드는 여러 선진국들의 눈길을 끌었다.

영국에서는 현재 30개 이상의 SIB가 동시에 진행되는 등 해외에서는 이미 임팩트 투자를 하나의 자산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자본주의적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SIB의 성공은 역시 쉽지 않다. 서울시 SIB도 첫 제안이 오간 건 2011년이지만 공방을 거듭하다 2014년에야 '서울특별시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 조례'가 제정됐다. 조례 제정 이후 과정도 험난했다. 한 사업에 참여하는 주체가 정부, 중간운영기관, 투자기관, 사업수행기관, 평가기관 등으로 다양하다 보니 다소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방선거 등으로 진행이 한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한국사회혁신금융 박정환 상임이사는 "미국의 경우 지난 1995년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지역재투자법을 통해 재원을 끌어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면서 "반면 국내는 '사회투자'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없다 보니 구조적 어려움이 많다. 예를 들어 투자 쪽에는 '사회투자' 개념이 없어 일반영리투자와 똑같은 세법 지배를 받고,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은 기부개념이라 다시 자본이 회수되는 SIB가 계정상 맞지 않다"면서 세제혜택 등 제도적 인센티브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실험] 수익 아닌 사회성과를 측정,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지급


■안정적 자금조달 위한 거래소 도입 '물꼬'

중장기적으로 사회적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일환이 '사회적기업 거래소' 설립이다.

사회적기업 거래소는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미션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회적기업의 주식 또는 프로젝트를 거래소에 상장시킨 후 윤리적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공급받는 중개조직을 의미한다. 일반 기업들이 코스피, 코스닥 등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받는 것처럼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속에 자금난을 겪는 사회적기업에도 자본시장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자금줄에 숨통을 터준다는 것이다. 사회적기업 거래소에 참여하게 되면 새로운 후원자 및 투자자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궁극적으로 사회발전과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다.

이미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회적기업 거래소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취약계층 및 소외계층 지원을 목표로 새누리당에서 발족한 나눔경제특별위원회(나눔특위)에서 활동하던 정미경 전 의원은 지난 2월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제공, 사회서비스 제공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사회적기업육성법'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사회적기업육성법 개정안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은 사회적 투자자에 대해 투자수익 감면 등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은 사회복지사업 범위에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른 사회적기업 사업을 추가하는 가운데 민간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회적기업과 기부형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사회적기업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신설됐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거래소를 어느 기관 산하에 설립할 것인지를 놓고는 각계의 의견차가 여전해 본격적으로 사회적기업 거래소가 출범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간 주도를 골자로 하는 새누리당 나눔특위의 움직임에 대응해 한국거래소의 자회사 형태로 '한국 사회적기업 거래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존 증권거래소의 경우 자본시장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주체로서 이미 시장 운영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거래소라는 공개된 시장은 투명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프로젝트 상장형의 사회적기업 거래소를 사회적기업 상장형으로 발전시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자본시장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거래소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이훈희 전 부연구위원(현 혜윰학술컨설팅 대표)은 "공동모금회는 기부금 모집이나 배분 기능을 담당하지만 환경적 목적의 프로젝트까지도 전문적으로 조사·발굴하고 심의·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라면서 "사회적기업 거래소는 프로젝트 상장형과 사회적기업 상장형의 방식이 존재하므로 두 방식을 모두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진 한국거래소를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창업초기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코넥스 시장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새로운 조직 및 시스템 도입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데다 기존에 운영되는 시스템을 활용해 대출, 채권 및 펀드 운용 등의 수단을 담당하도록 해 시장 충격과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브라질 사회적증권거래소(BVS&A)는 사회적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회적 투자자'를 자금이 필요한 사회적기업과 연결해 자금을 조달하는 증권거래소 기능을 모방했다. 모회사인 브라질 증권거래소와 인력, 규정, 업무 등을 공유해 사회적 투자에 대한 책임감, 투명성, 신뢰성을 보장한다.

비영리기업의 자금수요를 파악한 후 그 자금을 증권화해 관심을 갖는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관료적 기구 역할을 한다.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선정되면 그에 필요한 자금수요를 증권화한 사회적 주식을 투자자에게 제공한다.
주식에 대한 대가는 금융적인 이익이 아닌 사회적 이익의 창출이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거래소에 거래될 기업들이 현재 많지 않은 데다 기존 장외기업 거래시장의 실패가 되풀이될 수 있어 당장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는 "사회적기업 거래소 설립은 바람직한 대안이나 외국에서도 여러 곳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코넥스처럼 실패한 사례들을 잘 살펴보고 거래소에 참여할 사회적기업들을 육성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박지영 장민권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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