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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9 17:25

수정 2017.06.29 17:25

[여의나루]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나경원 의원이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당사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경우 재판장은 선임하도록 명하고, 이에 불응하면 상고장을 각하하며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당사자를 위해 민사국선대리인을 선정한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가 증거를 제출하고 공격.방어를 하므로 당사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능력에 따른 불합리한 결과를 막을 필요가 있다. 특히 중대한 법령위반이 있어야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데 이를 입증하려면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형사소송과 헌법재판에선 이미 도입됐다.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 70세 이상,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법도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으면 심판청구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과거에도 시도되었으나 변호사가 부족하고 소송구조제도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연 1500명 이상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고 소송구조제도도 확충돼 상황이 달라졌다. 상고심 사건 수는 2011년 1만1500건에서 2015년 1만3865건으로 늘었고, 처리기간도 3.6개월에서 5.2개월로 늘었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은 처리기간을 줄일 뿐 아니라 상고기각률도 낮출 것이다. 현재 소액사건을 포함한 민사단독사건의 상고기각률은 88% 이상이다.

독일은 민사사건 1심 및 고등법원과 연방대법원 사건, 가사사건, 행정사건의 고등행정법원과 연방행정법원에서 제소 단계부터 소송 종료 단계까지 변호사 대리를 원칙으로 한다. 프랑스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변호사만 변론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도 기본적으로 변호사 필수주의를 택했다. 미국은 이를 채택하지 않지만 변호사가 100만 명을 넘는 등 쉽게 소송 의뢰가 가능하므로 아주 경미한 사건 외에는 본인소송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우리 민사재판의 비효율성은 법률전문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데서 비롯된다. 본인 소송은 해당 소송뿐 아니라 그 소송의 지연으로 인한 다른 소송까지 연속적으로 지연시켜 법원의 업무부담을 가중시킨다. 법원은 재판진행에 관한 절차와 내용을 일반인 당사자에게 설명하기 바쁘고, 이러한 친절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민사소송에서 지켜야 할 일정한 방식이나 기간에 관한 소송지식이 부족한 당사자들의 미숙한 대응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은 불필요한 소 제기를 방지해 사법절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승소가능성이 없거나 당사자들이 감정에 치우쳐 제기하는 사건을 변호사가 사전에 거를 수 있고, 효율적 소송준비를 통해 심리 집중과 신속한 절차진행이 가능하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사법시스템 향상 및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 실질화라는 측면에서 추진돼야 하고, 이는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법적 권리다. 변호사 보수를 부담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 민사국선대리인 제도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한변협의 역점사업이기도 한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최종 통과되기를 바란다.

김 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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