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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민사소송 국선 도입해 약자를 돕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8 17:14

수정 2017.09.28 17:14

[여의나루] 민사소송 국선 도입해 약자를 돕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무상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준다. 그런데 현재 국선변호의 사회적 안전장치는 형사소송에 국한되어 있을 뿐 민사소송에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어 항상 반쪽짜리 보장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6년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형사사건은 26%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민사소송이었는데 민사사건 96만건 중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은 26만건, 27%에 불과했다. 특히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피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건수가 변호사 선임 소송건수의 73%인 19만건에 달한다.
소송전문가인 변호사에게 맞서 일반인이 소송을 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주장할 것을 제때 주장하지 않아 억울하게 패소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형사사건은 2016년 38만건 중 34%에 달하는 13만건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았으며 사선변호인을 포함하면 22만건, 60%의 피고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다.

법을 위반하지 않은 선량한 일반 국민이 쉽게 부딪히는 사건은 대부분 민사사건이다. 최근 아르바이트, 소규모 자영업자, 일용직에 종사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대금 체불과 같은 갑의 횡포다. 이른바 '을'인 사회적 약자들은 법에 취약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으며, 이를 이용한 '갑'의 횡포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는 형사사건에서 일정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변호인 없는 재판을 금지해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 같이 민사사건에서도 변호사에 의한 변론을 의무화하고 경제적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는 당사자에게는 민사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사회적 복지제도다.

독일은 제1심 민사사건을 포함한 고등법원.연방대법원 사건에서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를 취하고 있고, 프랑스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호사만 변론을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도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택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정식으로 채택하진 않았으나 실질적으로 아주 경미한 사건 외에는 당사자소송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도 사법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민사 1심부터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나,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도입이 기존 사법시스템에 상당한 변혁을 가져온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대법원 상고 사건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적용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대한변협은 소외계층을 위한 사법적 안전장치 마련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필수적 변호사변론주의 도입을 위해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는 법률지식이 부족한 당사자에 대한 조력을 통해 권리 보호를 보장하고 승소 가능성이 없는 재판 청구를 자제하게 한다. 변호사의 참여로 재판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변호사의 감시를 통해 사법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등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공공복리가 크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당사자는 대법원에 국선대리인을 선임해 줄 것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국선대리인 보수는 대법원 규칙에 따라 국고에서 지급하도록 정하면 된다.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를 통한 민사 국선대리인 도입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무기평등의 원칙이 보장됨으로써 국민의 권익이 적극적으로 신장되기를 기대한다.

김 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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