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특허제도와 시장실패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8 17:12

수정 2018.02.18 17:12

[특별기고] 특허제도와 시장실패

'보이지 않는 손'이 최적의 경제효율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아직도 견고하다. 그러나 정부개입 없이는 최적의 경제효율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라고 한다. 특허제도도 시장실패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다. 신기술 개발은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충분한 보상이 어렵다. 무형의 지식은 쉽게 도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개입으로 신기술에 대해 일정기간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고 이것이 바로 특허제도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수준의 특허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기술 개발에 대한 시장실패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고, 이는 혁신성장 전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술탈취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우리 경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수직 계열화된 불완전경쟁시장이기 때문이다. 특허는 기술 개발자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익을 보장해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다른 대기업과는 거래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술을 사줄 사람도 독점자가 되고 기술 개발자의 독점적 지위는 유명무실해진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 계열화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둘째는 우리나라 특허시장의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특허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이다. 각 나라마다 등록해야하고 침해소송이 걸리면 변호사, 변리사, 기술전문가 등 여러 전문인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 특허를 등록할지 여부는 그 시장에서 특허로 인한 기대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GDP 규모가 14배인 미국 시장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의 특허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특허침해 손해배상액 인정에 인색해서 미국의 80분의 1 수준인 6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특허로 인한 기대이익이 낮으므로 기업들은 특허등록 및 관리비용에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튼튼한 특허를 확보하지 못하고 특허침해, 기술탈취에 허술하게 당하게 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는 기술탈취 사건에는 높은 기술적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소송제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은 최종판결까지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판단이 쉽지 않은 만큼 소송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신속한 정부의 행정지도나 시정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술탈취는 무형의 지식재산 문제이고 그 침해여부에 대한 판단은 '무 자르듯' 간단하지 않다. 해당 기술이 보호 가치가 있는지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있는 판단을 해주지 않으면 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권한만이 아니라 법적,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는 데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허청이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 특허청은 특허제도와 기술 전문성을 겸비한 지식재산권 전문가 집단이다.
최근 특허청은 부정경쟁행위에 대해서 적극적인 행정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기술탈취에 대한 시정조치 권한을 특허청에 부여하기 위한 관련 법령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허제도의 시장실패'를 특허 전문가 역량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준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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