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보이지 않는 범죄 친족성폭력] 친족성폭력, 미성년 때 주로 발생.. 나이든 후 처벌할 방법 없어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0 16:55

수정 2018.04.10 16:55

<3> 피해자 두번 울리는 공소시효
공소시효 폐지 청원 봇물
신고나 고소하더라도 다른 가족의 회유 시달려
홍수연씨(가명.여.47)는 약 40년 전 15살 많은 친오빠에게 성폭행 당했다. 중학교 때까지 10여년을 혼자 폭력에 견뎌야했다. 수십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고통에 최근 오빠를 고소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는 "변호사부터 여성긴급전화 등 전화를 해보지 않은 곳이 없다"며 "오래된 일이어서 방법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고 가슴을 쳤다.

어릴 때 가족들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친부는 대화상대가 아니었다.
친모는 가해자인 친오빠를 편애했다. 홍씨는 "한번은 성폭행 당하는 것을 오빠 부인이 본 적이 있는데 몹시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뒤 피해사실을 털어놓은 홍씨에게 친모는 오빠를 두둔했다. 전 재산마저 가해자에게 주고 홍씨에게는 3000만원만 쥐어줬다.

홍씨는 결혼했다. 그러나 우울증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홍씨는 2차례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15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그는 "외국에는 과거를 잊는 약이 있다는데.."며 "스스로가 더럽고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 같은 사람이 없도록 현재 친족성폭력 카페를 만들어 피해경험을 공유한다.

홍씨는 이혼 후 편의점 저녁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빠는 평범하게 산다. 자식도 있다. 오빠가 성폭행에 대해 한 말은 "기억 안 난다" 뿐이다. 홍씨는 소리 한번 질러본 적 없다. 사과, 처벌 모두 그에게는 바랄 수 없는 일이 됐다. 그는 "지옥 속을 헤맨다"며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죽기 전에 한번 따지고 싶다"고 흐느꼈다.

■친족성폭력 어릴 때 발생, 공소시효 폐지해야

친족성폭력은 긴 시간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려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친족 성폭력 범죄도 살인죄처럼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잇따른다.

친족성폭력은 가중처벌할 뿐 공소시효 배제 규정은 없다.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지만 이 법은 2011년 시행돼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홍씨는 예외다. 박선영 법무법인 포럼 변호사는 "오랜 기간 참던 피해자가 미투운동에 용기를 내 고소하려 해도 공소시효 때문에 낙담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 법적처벌이 이뤄질 때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 송미헌 원장은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은 큰 의미"라며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 전에는 과거 사건을 주로 말한다면 처벌 이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대화 주제로 삼는다"고 말했다.

공소시효 폐지에 신중한 입장도 있다. 정승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시효가 정의실현 차원에선 부당해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국가 수사력에 한계가 있고 법적 안정성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친족성폭력 문제는 가해자 처벌 시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보안이 필요한만큼 다각도로 살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가족이잖아" 피해자에게 합의 강요

친족성폭력 피해자는 재판과정에서 합의를 강요받기도 한다. "가족이니까 봐 달라"는 가해자 외의 가족 구성원 회유와 협박이다.
전문가들은 친족 간 범행 시 처벌불원의사(합의)를 형벌 감경인자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김영미 변호사는 "(친족성폭력) 미성년 피해자는 보호자에 의해 합의가 이뤄지고 피해자보다는 가족 전체에 대한 고려가 우선될 수 있다"며 "현재 서울지역 법원은 합의서의 진정성 여부 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이에 소홀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과거 합의가 있으면 감경이 원칙이지만 감경하지 않도록 방침을 정할 수 있다"며 "다만 경직된 운영을 막기 위해 피해자가 처벌보다 다른 해결방법을 원하면 감경이 가능하도록 예외를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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