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Change]

e-ID 하나로 투표·의료 원스톱 처리.. 국민의 일상을 바꾸다

블록체인發 데이터혁명 시작 (下) 블록체인 선진국 '에스토니아'
출생 동시 e-ID 부여 인구 90%이상 보급 세계 최초 전자투표… 비용·시간 절감 효과
투명성 위해 소스코드 민간사이트에 공개
의료기록도 블록체인 기술 적용 보안 강화.. 병원간 공유되는 개인 정보 완벽하게 보호

에스토니아 전자신분증 샘플. 에스토니아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전자투표가 도입됐다. 전자신분증(e-ID)으로 투표가 가능하다.

【 탈린(에스토니아)=김아름 기자】 '권력에 의해 개인이 피해보지 않는 세상.'

우리나라의 '대의 민주주의'는 대리인 문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 시의원과 행정부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국민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의 다원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과거 20세기의 구조로 유지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라는 지적이다. 그동안의 의사결정 비용의 한계 때문에 도입된 대의 민주제는 기술로 직접 민주제로 탈바꿈될 수 있다. 스마트폰상에서 안전한 비밀 직접투표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국민투표를 거의 무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지면 소외된 90%가 정부의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 혁신이 일어난다. 이른바 정보의 '분배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불씨가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되고 있다.

■인구밀도 낮은 에스토니아, 전자투표 최초 도입

에스토니아는 2005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전자투표를 실시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태어나는 동시에 이름보다 먼저 전자신분증(e-ID)을 부여하는데 이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e-ID시스템은 2001년 은행, 통신회사들과 함께 개발을 시작해 2002년 처음 보급한 이래 현재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에 보급됐다. 디지털 인증서 칩이 내장된 e-ID로 웹사이트, 인터넷뱅킹, 정부 서비스 등에 카드리더와 간단한 로그인 절차로 본인 인증이 가능하다. 2012년부터는 심카드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e-ID도 제공한다.

2011년 e-ID로 전자투표시스템에서 투표한 비율은 전체 투표의 25%를 차지했고 현재는 30% 정도 수준이다. 전자투표를 통해 1만1000일의 업무시간을 줄인 효과를 보였다.

에스토니아에서 전자투표가 도입된 배경에는 낮은 인구밀도를 꼽을 수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 서울시의 75배에 달하지만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하는 서울시에 비해 에스토니아 인구는 130만명으로 10분의 1 남짓하다. 인구밀도가 ㎢ 당 26명으로 매우 낮다. 아르네 코이트메 에스토니아 사회정책부 전자투표국 팀장은 "격오지에는 투표소가 별로 없고 이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든다. 노인,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선거하러 투표소에 가는 데 제약이 많았다"며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전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가 도입됐다"고 진단했다.

오프라인 투표 날짜 10일 전부터 3일 전까지 전자투표가 가능하다. 즉, 사전투표에만 전자투표가 적용되는 것이다. 전자투표상으로 한 번 투표했더라도 몇번이고 자신의 의사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서면투표로 최종 결정할 수 있다. 한번 전자투표를 했으면 계속 전자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전자투표를 한 사람은 다음 투표도 꼭 참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르네 팀장은 "전자투표는 자율선택이 원칙이다. 신뢰하는 사람은 이용하고 아닌 사람은 안해도 된다"라면서 "전자투표 이용률에서 연령, 성별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난 데다 특정 정당에도 선거결과에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보면 서면투표와 비교했을 때 중립성이 담보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성 논란을 막기 위해 민간서비스를 이용했다.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깃허브에 전자투표시스템의 소스를 공개했다. 깃허브는 전 세계 오픈소스 공개사이트다. 여기에 소스코드를 공개해서 조작 가능성의 의문을 갖지 않는 장치로 작용하도록 했다.

■블록체인, 건강관리시스템 보안 강화

에스토니아에서는 전자투표뿐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대민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에스토니아 E-건강재단은 전국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전자건강기록, 전자처방전 등 건강관리시스템의 데이터 보안 강화를 위해 2016년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의사와 개인은 온라인을 통해 개인의 건강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건강 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권한이 부여된 개인만이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다. 데이터 기록 및 열람을 위해 사용하는 e-ID에 KSI(Keyless Signature Infrastructure)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보안을 강화하고 데이터의 위변조 가능성을 제거했다. 각각의 기록에 대한 대푯값, 혹은 고윳값을 만들어서 블록에 저장한다. 원래의 기록은 크기 때문에 이를 축약한 일정한 크기의 고윳값을 만드는 것이다. 고윳값의 크기가 일정하고 아주 작기 때문에 블록에 저장하기가 쉬워진다. 블록에 저장되는 정보는 고윳값과 앞 블록의 정보, 생성자의 서명인데 키가 없이도 서명 정보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방식은 공개키기반구조(PKI)다.
PKI에서는 개인이 가진 인증서에 들어있는 키(전자적인 열쇠)를 가지고 서명을 하는데 KSI는 개인의 키 없이 서명을 만들어서 블록에 저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건강데이터의 95%, 처방전의 99%가 디지털 문서로 저장돼 의사들은 매년 50만건 이상의 환자 의료데이터를 건강관리시스템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

프리트 토흐버 에스토니아 사회정책부 혁신 e-서비스 담당관은 "병원에 가서도 의사에게 별도로 '어디가 아파서 과거에 진료를 받았는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된다"며 "병원끼리 데이터가 이미 공유돼 의사는 e-ID로 모든 치료기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