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주52시간제 사각지대, 감시·단속직 강제전환에 "불안"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8 17:06

수정 2018.06.28 17:08

사용자측 일방적 도입 동의서 서명 강요하기도
주52시간제 사각지대, 감시·단속직 강제전환에 "불안"


다음달부터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한 지방의 공공기관은 청원경찰 근무자들에 대해 감시(監視)·단속(斷續)직을 신청할 지 고민하고 있다. 밤낮으로 건물 경비를 담당하는 청경 업무상 주 60시간 가까이 일한다. 고용노동부로부터 감단직 승인을 받으면 노동시간 단축 대상에서 제외돼 기존처럼 업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면피(面皮)… 감단직 문의 쇄도

28일 고용부에 따르면 감단직 근로자는 법 적용 제외 대상이다. 근로시간 및 휴게, 휴일 관련 적용을 않아 주 52시간을 초과해 업무를 해도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주휴수당이나 각종 가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감단직의 경우 경비업무만 하거나 실제 근무시간보다 대기시간이 많아 노동 강도가 낮은 경우에만 신청이 가능하고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업종 곳곳에서 감단직을 주 52시간 회피용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한 노무사는 "고용부에서 감단직에 대해 주 52시간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고 하자 감단직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기업은 가산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노동시간 단축을 피할 대안이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기업 임원의 운전기사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부가 감단직 사례로 대기시간이 많은 임원 운전기사를 언급하면서부터다. 삼성전자나 SK그룹 등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운전기사에 대해 감단직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견 및 중소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 중소기업 임원 운전기사인 박모씨(45)는 "회사가 노동시간 단축 문제로 단속직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운전을 하지 않는 대기시간에는 회사에서 서류 작업을 하는데 단속직 적용은 부당하다"며 "주 52시간 단축근무는 커녕 임금만 줄어드는 피해를 입게 될 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감단직 신청을 하려면 각 직원마다 업무 특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신청이 무분별하게 이뤄져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청원경찰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감단직 적용 문제를 놓고 청경들의 불만이 가득하다. 이들은 국가 중요시설의 경비를 맡고 있어 업무 중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고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문제로 감단직 신청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10년째 한 공공기관에서 청원경찰로 일한 이모씨(37)는 "최근 회사에서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안이나 감단직 적용 방안을 고민하는데 많은 청원경찰들은 '감단직은 안된다'고 반발해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청에 물어봐도 특수 경비 업무가 감단직종에 해당될 수 있는지 감독관의 의견이 저마다 달라 갈피를 못 잡겠다"라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신청과 승인… 최근 5년 승인률 98%

근로자의 동의 없이 감단직을 도입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감단직을 신청할 때 직원 동의가 필요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올해 4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회사로부터 감단직 서류에 서명하란 강요를 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한 대기업의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라고 밝히며 "(노동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회사는) 우리가 주 평균 68시간을 근로하고 있어 감시, 단속적 근로자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며 우리는 단속적 근로자가 아닌데도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을 시 퇴사 처리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감단직 승인 절차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는 2016년 1만 439건의 감단직 신청 중 1만 263건(98.3%)을 승인했다. 최근 5년간 평균 승인율도 약 98%다. 근로감독관들이 심사과정에서 현장점검을 하지 않고 서류심사로만 승인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기업은 서류 내용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우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대표는 "감독관이 현장실사를 하지 않고 감단직 승인을 내주기도 하는데다 한번 적용되면 이를 취소하기도 어렵다"고, 다른 노무사는 "자문 기업에서 감단직 적용 대상이 아니어도 '서류를 잘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감단직 심사 과정에서 현장실사를 의무화하도록 규정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미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이를 피하기 위해 감단직 신청을 하는 문제를 알고 있다"며 "현행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는 감독관이 서류심사 혹은 현장점검을 재량으로 결정하게끔 돼 있는데 하반기 중으로 현장점검을 의무화하도록 규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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