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씨, 우리 헤어져] ⑦전국을 휩쓴 구제역과의 전쟁
머리가 희끗한 한 남자가 눈시울을 붉힌 채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가축 매몰 광경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아내와 더불어 몇 마리 되진 않아도 듬직한 소들을 키우던 축산 농가의 가장이었다. 소를 키우면서 자식들을 결혼시켰고 이제는 새로운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010년 11월에 경북 안동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관계 당국은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듬해 봄에는 호남지역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결국 이 구제역은 가축 약 350만 마리를 도살처분하고 매몰한 뒤에야 종식될 수 있었는데, 보상비, 방역비,매몰비를 포함해 약 3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발생 지역의 주민과 차량 이동을 통제하면서 각종 행사가 취소되는 등 지역 경제에도 많은 악영향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도 우려되는 등 사상 최악의 가축질병에 의한 재앙으로 기록됐다.구제역이란 소, 돼지, 염소, 사슴 등과 같이 발굽이 2개인 동물(우제류)에게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을 의미한다. 치사율이 최대 55%에 달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특성이 있는데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감염된다. 따라서 무리에서 한 마리가 감염되면 나머지 가축 모두가 급속하게 감염된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즉각 그 확산을 막는 한편, 발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역학조사와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해당 농장주가 11월 초 베트남에 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우리나라 주변 국가들에서는 구제역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농장주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구제역 발생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에 바로 농장에 출입하는 등 제대로 방역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국 15개 공항과 항만에서는 수입 축산물과 해외 여행객, 우편물을 검색하고 있다. 그러나 검역관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2003년 1200만명이었던 해외 여행객 수는 2010년 21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덩달아 불법휴대축산물 반입 건수도 2003년 9000건에서 2010년 4만 5000건으로 증가했는데 이를 담당하는 검역관의 수는 78명에 불과했다. 2010년은 축산 관계자의 입국신고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그해 5월부터 11월 사이에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한 나라를 방문한 축산 관계자는 약 1만6000여 명. 이중 1만여 명만 자진신고를 한 후 소독과 방역 교육을 받았다.
농가 차원에서 철저한 차단방역을 실시한다면 얼마든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시 축산 농가에서 소독 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돈이 드니까, 그걸 설치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잖아요."
당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서 표본 농가를 대상으로 축산 농가의 차량 소독조 설치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우 농가는 약 19%, 양돈 농가는 약 25%만이 차량 소독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축사 주변을 막는 울타리 경계의 경우 한우 농가는 약 71%, 양돈 농가는 약78%가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만일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에 야생동물 또는외부인이 출입하게 된다면 큰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농장 출입차량과 사람을 기록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양돈 농가는 제대로 잘 기록해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한우 농가는 부실한 실정이었다. 2010년 11월 최초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되자 수의과학검역원에서는 검사결과 양성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해당 지자체에서는 간이진단키트 검사를 바탕으로 음성으로 판정하고 종료했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 진단에 혼선이 발생함으로써 확산 방지의 귀중한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많은 지자체의 경우 구제역 등 가축의 질병 진단에 대해 전문기관에 비해 정확성이 부족한 측면이있다. 특히 과거 해당 지자체에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경험이 없다면, 구제역이 발생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간과한 채 초기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해당 시·도의 가축방역기관장은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 역학조사를 바탕으로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가축 전염병의 유입 원인과 경로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역학조사는 구제역 등의 감염 원인과 경로 파악을 주로 탐문조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축산 농가와 관련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정보 제공이 없다면 원인을 규명하기도 어렵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는 당시 실제 조사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안동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역학조사를 바탕으로 이동 경로를 파악해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조사관들의 노력은 역부족이었다.
"사람과 차량의 출입기록을 정리해 둔 곳을 찾기 힘들었어요."
"유통업자와 거래한 기록도 없고…."
"농장주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하지 않고 '아마 그랬을 거다' 라고 하니까."
구제역 발병이 확인되자 정부는 역학조사와 더불어 방역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구제역 방역 조직의 역할은 농림수산식품부가 그 정책을 수립하고 방역 과정의 지휘는 각 지자체가, 그리고 실무는 민간단체가 지원하고 있었다. 실제 방역 작업은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 농장을 중심으로 그 확산에 영향을 줄수 있는 차량과 이동경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역학조사는 주로 탐문에 의존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방역 작업은 많은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후에 실시하는 사후 방역 위주로 추진돼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2010년 11월에 안동시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12월이 되자 경상북도와 경기도, 강원도, 인천시까지 확산됐고 12월 29일에는 구제역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됐다. 이듬해 1월에는 기존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확산되다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에서도 발생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관계 당국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 구제역 확산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구제역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국제적으로 청정국 지위를 얻기 위해 무조건 살처분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매몰처분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가장 신속하게 구제역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이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한 인력이 부족해 공무원이 과로사하거나 안전사고로 숨지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고, 살처분 후 매몰 지역의 관리가 허술해 바이러스 확산을 방치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침출수가 비닐을 뚫고 나와 2차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매몰지역에 대한 2차 오염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정부는 2011년 2월 15일 첨단 오염감지기를 활용한 매몰지 24시간 점검 체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축 매몰지 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2011년 1월에 살처분 규모만 200만 마리를 돌파하면서 기승을 부리던 구제역은 4월까지 계속되다가가 확산세가 한풀 꺾였고 5월 21일부로 추가 확산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은 2014년에 3건이 발생했으며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국 7개 시·도, 33개 시·군에서 185건이 발생, 2016년에는 양돈 농가(21건), 2017년에는 한우 농가(9건)에서 발생하는 등 구제역과의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기사는 행정안전부가 과거 재난대응의 문제점과 교훈을 담아 발간한 재난대응 사례집 '재난씨, 우리 헤어져'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mail protected] 김아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