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공탁금제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20 17:15

수정 2018.08.20 17:15

[차장칼럼] 공탁금제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형사사건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해자에 의한 보복범죄가 무섭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런 이유로 사법기관에선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이 노출돼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형사기록의 열람 등사에서 피해자 등의 인적사항을 비밀로 하고 있다. 특히 마약 등 강력범죄로 보복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2016년 제정된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을 통해 검사가 신원관리카드를 관리하고, 범죄 피해자나 신고자 등의 성명.연령.주소.직업 등 신원을 알 수 있는 사항을 조서 등에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치들이 되레 피해자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사죄 의미로 법원에 맡긴 합의금 성격의 공탁금을 받을 수 있다. 가해자가 공탁금을 내기 위해선 공탁서에 피공탁자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현행 공탁법이 규정하고 있어 신원노출에 대한 우려로 피해자가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거나 배상명령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두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필요로 한다. 특히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함과 동시에 피해자에게 금전배상을 명령하는 배상명령은 손해의 범위를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법원이 각하하는 경우가 많아 인용률이 25%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피해 배상을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본인이 입은 피해를 법정에서 다시 한번 주장해야 하는 심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 합의금 공탁이 가로막히면서 사과를 원하는 가해자 입장에서도 결과적으로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리한 양형을 선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법원은 형사사건에서 합의에 준할 정도로 상당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 형을 감경하는 요소로 고려한다.

법조계에선 피해자 인적사항없이 사건번호로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데도 법원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과 민원을 회피하려는 목적 때문에 피고인의 정당한 권리만 박탈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늦었지만 지난해 10월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탁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개정안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를 위한 공탁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인적사항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알 수 없을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이나 법원, 사건번호, 사건명 등으로 피해자를 특정해 공탁할 수 있도록 했다.
조속한 개정법 시행을 통해 가해자에게는 사죄를 표할 기회를 부여하고,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노출하지 않고도 합의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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