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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통계청장 바꾼다고 수치가 달라질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27 17:21

수정 2018.08.27 17:21

13개월만에 돌연 경질 독립성 훼손하면 안돼
정부는 26일 황수경 통계청장을 13개월 만에 경질했다. 후임에는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임명했다. 이 인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득분배지표가 나빠진 것으로 조사된 지난 1·4분기 가계소득 통계와 관련된 문책성 인사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나라 경제가 불난 마당에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야' 하고 소리치는 사람을 나무란 꼴"이라고 비난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통계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도, 개입돼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인사는 그것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드러난 여러 상황들에 비춰 볼 때 문책성 인사라는 의심을 살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의 통계가 발표됐던 지난 5월 청와대는 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에 이 통계에 대한 검증을 의뢰했다. 두 기관은 가계 단위로 작성된 통계를 임의로 개인 단위로 바꿔 통계청 통계에 대한 반박성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제출했다. 통계 왜곡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료를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인 영향이 90%"라고 했다. 후임으로 임명된 강 청장이 문제의 반박성 보고서를 만들었던 당사자라는 점은 문책성 인사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만약 정권에 불리한 통계가 나왔다는 이유로 통계청장을 바꿨다면 심각한 문제다. 통계는 국가의 중장기 기본계획을 세우는 기초가 된다. 그 통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나라의 장래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통계법을 만들어 통계의 객관성과 통계청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설혹 정상적 인사권 행사였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통계청장 인사를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통계청장 인사는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사람을 골라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시기에 해야 한다. 통계의 영역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무풍지대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기회를 통계의 객관성과 통계청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정부 초기인 2013년 통계청장 임기를 4년으로 보장하는 통계법 개정안(대표발의자 박남춘)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지금 정치적 입장이 여당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정신을 버려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는 통계청을 대통령 휘하에서 독립시키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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