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한 범인 앞에서 덜덜 떨며 말했지만… 보복 두려워”
‘범죄피해자 의견진술제도’ 피고인 퇴정 안돼 유명무실
변호인 통하지않고 직접진술, 공포 속에서 재판부에 호소..피해자를 위한 배려는 없어
형사재판 1천건 중 불과 3건..제도미비탓 전체 0.3% 수준
"증인 신문할 때만 피고인 퇴정이 가능합니다."
지난 3월 서울 모 지방법원에서 성폭력 피해자 20대 여성 A씨는 '범죄피해자 의견진술제도'(의견진술)를 이용하려고 했다. 범죄피해자 의견진술제도란 판사, 검사, 변호사가 주도하는 재판을 넘어 피해자가 직접 의견을 말함으로써 재판에 피해자 의사가 반영되는 제도다. 단, 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피해자가 양형단계에서 피해 정도, 피고인 처벌 등 범죄사실에 해당하지 않는 사항을 말한다.
A씨는 재판부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변호인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말하길 원했다. 그러나 법정 한편에 앉은 피고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하기가 두려웠다. A씨와 변호인은 잠시 재판정에서 피고인 퇴정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난색을 표했다. 형사소송규칙상 피고인을 퇴정시킬 수 있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졸지에 증인신문을 받았다. 증인일 때만 재판부 재량 하에 피고인 퇴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는 "제가 겪은 고통을 속시원하게 말하려했지만 갑자기 증인선서 후 검찰과 피고인 변호인 측 신문까지 받게 됐다"고 호소했다.
■증인신문-의견진술은 제도 취지부터 달라
범죄피해자 의견진술제도가 운영되지만 피고인 퇴정에 관한 법 및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피해자 두려움이 방치된다. 피해자는 훗날 보복범죄를 우려해 피고인 눈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때문에 의견진술이 피해자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제도지만 정작 피해자를 위한 배려가 없어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사소송법상 피해자가 증인신분에서 신문을 받는 경우 피고인 퇴정이 가능하다. 피해자가 의견진술을 하고 싶지만 피고인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증인신문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피고인 퇴정을 위해서 증인신문을 받으면 증인선서 후 검사 변호사를 통해 신문을 받는 형식이 된다. 반면 의견진술은 피해자가 재판부와 1:1로 말하는 형식이다.
대법원은 의견진술시 피고인 퇴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요구한 답변서에서 대법원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증인신문에 의하지 않은 피해자 등의 의견진술 절차에 있어서는 (피고인 퇴정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피고인 퇴정이 이뤄지지 않아 범죄 피해자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의견진술 제도를 이용한 강제추행 피해자 20대 여성 B씨는 "피고인이 제발 내 쪽을 쳐다보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해자가 없을 때 말하고 싶었다"며 "덜덜 떨면서 말했다. 법정에서 제 모습, 제 음성을 보고 기억했다가 (피고인이) 출감 후 보복할까봐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제도 미비" 형사재판 1000건 중 3건만 의견진술
전문가들은 피고인 퇴정이 불가능한 점은 의견진술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처음 법 취지가 피해자 생각과 감정을 재판부가 받아들이기 위한 제도임에도 피고인 퇴정 같은 피해자 보호조치가 되지 않는다"며 "제도와 피해자 간 괴리감이 크다.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견진술은 피해자가 재판에 당사자로서 적극 참여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피해자의견진술제도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캐나다에서 의견진술을 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4%가 "판사에게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32%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26%가 "정의감을 성취하거나 혹은 양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라는 설문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피해자들이 제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형사재판 1000건 중 의견진술은 불과 3건 정도만 이뤄진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피해자 등의 의견 진술이 이뤄진 사건은 2017년 전체 778건, 올해 1∼8월 442건뿐이다. 지난해 처리된 1심 형사재판 약 23만건을 감안하면 0.3%에 불과하다.
[email protected] 최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