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자치분권시대] 학교급식 지원조례 만든 건? 시민들이었다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역을 바꾸는 주민의 목소리
(上) 문턱 낮춘 주민참여조례
내년이면 도입 20년 맞지만 주민 조례청구 年평균 13건 불과
조직·시간·자금 없는 주민도 정책 제안 쉽게 할 수 있도록 온라인 동의 등 절차 개편

내년부터 자치분권이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자치분권의 핵심은 주민자치다. 지난 1999년 도입된 주민조례 제·개·폐 청구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도입 효과는 전무한 편이다. 서명자수 등 엄격한 청구요건으로 연평균 13건 청구에 불과해 활용이 극히 저조하다. 특히 까다로운 조례안 작성, 단체장 경유 등 복잡한 절차로 주민조례 청구 지연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지방의회의 무관심·비협조도 주민참여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다. 정부는 이에따라 실질적 주민발안 기능을 강화하고 활성화를 위해 별도법 제정(분법)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주민참여 정책의 문턱을 크게 낮춰 주민중심의 자치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구상이다. 그동안 주민 참여를 가로막았던 서명자수와 관련해 인구 규모별로 주민 서명 기준을 차등화한 점도 눈에 띈다. 대도시의 경우 최대 절반 이상 기준을 완화했다.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해 주민발안 연령도 18세로 낮춰 청년층의 지역참여도 촉진할 방침이다. 주민자치회의 위상도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보다 실질적인 역할과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한국의 미래를 바꿀 주민참여 조례와 주민자치회를 두번에 나눠 살펴본다.

25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들이 '온라인 주민조례 청구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공인전자서명으로 서명을 대신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을 통해 조직, 시간, 자금이 없는 일반 주민도 지역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
25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들이 '온라인 주민조례 청구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공인전자서명으로 서명을 대신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을 통해 조직, 시간, 자금이 없는 일반 주민도 지역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

#1. 우리나라보다 주민참여조례 제도가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서명수집 전문업체가 등장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훈련된 유급요원이 작성한 주민발안 법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통상 주민발안 상정에 통상 50만달러, 심하면 100만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그 결과 주민발안제는 자금력을 가진 기업, 정치인, 특수 이익집단의 전유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우리나라 주민참여조례는 지난 2000년부터 시행되면서 2017년까지 총 239건이 청구됐다. 학교급식·보육·학자금 등 지원 청구가 68%를 차지했으며, 주거 생활환경 12%, 도시계획 11%, 주민참여 4% 등 특정 분야에 쏠리고 있다. 지방의회 청구 결과는 가결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 12%는 부결, 31%는 각하·철회·폐기, 8%는 진행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2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주민참여조례 제도는 도입 초기 기대치에 비해 참여율이 저조하고 관심 분야도 좁았다. 집권기관 내내 자치분권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키겠다는 이번 정부는 주민참여조례 제도를 '지역민 참정권'의 꽃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온라인 청구 시스템으로 접근성을 크게 높인데다 관련 법령까지 대폭 정비한 만큼 내년부터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1999년 도입 이후 주민 조례청구 연평균 13건

주민참여조례는 19세 이상 주민의 연서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조례의 제정이나 개정·폐지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청구된 조례안을 지방자치단체 장이 지방의회에 부의하는 간접발안 형태로 진행된다.

지난 1999년 주민이 조례의 제·개정을 청구할 수 있는 '주민조례 제정·개·폐 청구제도'가 도입됐다. 이를 필두로 주민감사·소송, 주민투표·소환, 주민참여예산 등이 실시되면서 주민 직접참여의 출발점이 됐다.

주민조례 청구는 아이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학교급식 지원조례'나 청년의 권익증진과 지역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청년 기본조례'처럼 새로운 정책방향을 선도했다. 영유아 보육지원, 작은 도서관 설치같이 주민 생활환경을 직접 바꾸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 2009년 서울광장 사용 허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시민'이었다. 당시 주민청구 조례개정안은 부결되었으나, 이를 계기를 의원발의안 재심의를 통해 통과됐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간 주민 조례청구는 연평균 13건에 그치고 있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이 34만건을 넘고, 자치단체 주민제안 홈페이지에 수많은 제안이 올라오는 것과 비교하면 사뭇 대조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주민발안을 성사시키기 위한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주민발안을 하려면 제한된 기간 내에 일정 수 이상 주민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수천명에서 많게는 10만명에 가까운 서명을 받아야 한다.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주민이 달성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공인전자서명으로 간편해진 '온라인 청구'

이에 따라 행안부는 지난 1월 공인전자서명으로 서명을 대신할 수 있는 '온라인 주민조례 청구 시스템'을 가동했다. 서명 수집을 위한 조직, 시간, 자금이 없는 주민도 정책을 제안하고 온라인을 통해 주민 동의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전국의 주민조례 제안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자치단체간 비교나 벤치마킹도 가능토록 했다. 앞으로 이 시스템을 명실상부한 온라인 주민참정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마련했다.

서명뿐 아니라 제안단계부터 모든 절차를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로 가능토록 하고, 법률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손쉽게 조례안을 만들 수 있도록 인공지능 입안지원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더불어 댓글, 토론 기능을 추가해 온라인상에서 찬반투표를 넘은 심도 있는 논의도 이뤄질 수 있도록 하려고 유도한다.

행안부는 향후 지자체 행정시스템과 연동해 모든 단계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모바일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민이 더욱 손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주민조례 개폐청구의 활성화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 제도화' 제1호 사업"이라며 "이 제도를 활용해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례가 널리 제정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지방의회 1년 이내 심의·의결 의무화

정부는 본격적인 자치분권 시대에 앞서 주민발안제가 실질적인 주민참여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지방자치법'의 2개 조항으로 있던 것을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로 분리해 별도로 제정한다.

그동안 지방의회의 무관심·비협조로 청구제도의 효과가 저하된다는 질타를 받아왔다. 실제 처리 완료된 안건(222건, 2000~2017년) 중 약 20%(42건)가 임기만료 때문에 폐기됐다.

정부는 우선 주민발안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인구규모별로 서명 기준을 차등화해 대도시의 경우 최대 절반 이상 기준을 낮췄다.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해 주민발안 연령도 18세로 내려 청년층의 지역 참여를 촉진할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중 33개국의 선거권 연령은 18세 이하이며 우리나라만 19세이다.

절차에 있어서도 단체장을 거치지 않고 주민이 직접 지방의회에 주민조례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조례안이 방치되지 않도록 지방의회가 1년 이내에 심의·의결하는 것도 의무화했다. 의원임기 만료시 자동폐기되지 않고 차기의회에 한해 계속 심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주민참여의 문턱을 대폭 낮춤으로써 지역 민주주의의 발전과 주민이 주인 되는 자치분권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일반 주민들이 정책수립 단계부터 정책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전자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첫걸음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주민발안을 염두에 둔 단체장과 지방의원이라면 항상 주민의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고, 더욱 건전한 대의 민주주의와 분권에 상응하는 책임있는 자세로 지방자치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자치분권시대] 학교급식 지원조례 만든 건? 시민들이었다
[자치분권시대] 학교급식 지원조례 만든 건? 시민들이었다

[email protected]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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