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fn팩트체크] 강력범죄 저지른 의사, 면허 유지된다

최중무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공공의대법’에 반대하는 의료계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의사는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유지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코로나 위기에서도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의료악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8월 31일 시작된 청원은 7일 현재 3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인에게는 일반적인 직업보다 더 강한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 하지만 마취된 환자를 성추행하거나 상습 성폭행하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가 유지되고 계속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꾸준히 보도돼왔다.

의료인의 결격사유가 명시된 '의료법 8조 개정 추이'에 따르면,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한 의료인은 형의 집행기간 동안만 면허가 취소되고 높은 확률로 재교부가 이뤄진다. 게다가 명시된 법률 외에 해당하는 범죄라면 의사 면허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의료법 8조, 의료인의 면허 취소 범위 점차 느슨해져

의료법 8조는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다룬다. 1-4조까지 정신질환자와 마약류 중독자 등을 결격 대상으로 보고 있다. 특히 8조 5항은 의료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면허 취소의 법적 근거가 된다. 해당 조항은 2007년 법안 개정을 전후로 5항에서 4항으로 이동했다.

의료인의 범죄 결격사유가 명시된 '의료법 8조 5항', 자료출처=국가정보법령센터,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의료인의 범죄 결격사유가 명시된 '의료법 8조 5항', 자료출처=국가정보법령센터,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가장 큰 변화는 1999년과 2000년 두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1999년에는 국가시험에 합격한 ‘의대생’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다. 강력범죄를 저질러 기소됐어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면 면허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00년에는 전체 의료계에 대한 면허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어떤 범죄이든 의사 면허가 취소되던 것이 특정한 법령(주로 의료행위 관련)으로 축소됐다. 의료행위와 연관돼도 명시된 법령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의사 면허에는 영향이 없다. 의료인이 불법촬영과 성폭력 등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료행위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자격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2002년에 ‘허위 진료비 청구’가 해당 범위에 추가된 뒤로 해당 법령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편으론 의료법에 명시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면허가 취소되는 것도 사실이다. 2018년 유명가수 故 신해철의 집도의는 수술 중의 과실로 환자를 사망케 해 논란이 됐다. 더불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환자의 비밀을 누설한 혐의도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환자 비밀 누설’로 인해 집행 기간동안 의사 면허가 취소됐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만으로는 면허를 취소하기 어렵다.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허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서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은 2013-2017년 동안 97.5% 승인됐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의사면허 취소 현황’에서도 2015-2019년 동안 98%가 승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심사 기능이 부족해 일각에선 ‘종신 면허’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의사 강력범죄, 성범죄는 얼마나 있나?

직업별 5대 범죄 검거 현황, 자료출처=검현숙 전 새누리당 의원실,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직업별 5대 범죄 검거 현황, 자료출처=검현숙 전 새누리당 의원실,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김현숙 전 새누리당 의원 보도자료 ‘전문직 종사자 5대 범죄 현황’에 따르면, 지난 4년동안(2010-2014) ▲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2890명이고 340명이 성범죄에 해당됐다. 2014년의 의료 종사자 수가 11만 명(OECD 통계)이라는 것에 단순 대입해도 2%가 넘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른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30.9명임을 감안하면, 수 만 명의 환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직업별 범죄 총합에서 의료인의 점유율은 18.6%에 달했다. 6개 직업군 중 3번 째로 많은 수치다.

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 자료출처=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 자료출처=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보도자료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에 따르면 4년 동안(2014-2018)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611명이었다. 직전 통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 기간 중 면허가 정지된 것은 4건 뿐이었다. 남인순 의원은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자격정지는 미미하다"며 "복지부가 별도로 시행하는 ‘성범죄에 대한 1년 자격 정지’ 행정규칙도 불법촬영 등의 경우 적용할 수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20대 국회, 14건 ‘임기만료폐기’, 21대 권칠승 의원 관련 개정안 발의해

20대 국회 기간(2016.5.~2020.5.)동안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 취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법안은 총 14개 발의됐다. 대부분 의료인의 성범죄나 대리수술 등에 대한 면허 취소규정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임기 동안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처리하지 못했고 모두 폐기됐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료인이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거나 일정 기간 정지할 수 있다. 웹사이트 등에 관련 정보도 공개한다. 정지 기간은 형기 집행이 종료된 뒤 5년이고 집행유예가 종료된 뒤 3년까지다.

■한국의 의료인 면허, 전문직 중 유독 관대해

권 의원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는 범죄유형에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때 면허가 취소된다. 특히 변호사와 세무사는 각 홈페이지에 단순 징계도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변호사법과 공인회계사법, 법무사법은 각각 결격사유 조항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전문인을 면허 취소하도록 규정한다.

전문직종 범죄 결격사유, 출처=국가정보법령센터,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전문직종 범죄 결격사유, 출처=국가정보법령센터, 그래픽=최중무 인턴기자

권 의원은 해외와 비교할 때도 한국의 의사 면허에 대해 유독 관대하다고 지적한다. 권 의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유죄전력이 있을 때 의사 면허가 발급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의사가 구속될 경우 결과가 나오기까지 의사 면허가 정지된다.

국민청원에서는 ‘이를 바꾸는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30만 명 동의를 넘겨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돼 '종신 면허'를 유지하는 의료계에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 전력 또한 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또다시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의료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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