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고용 추가' 용역 어떤 결과 나올까
외부 용역 통해 상반기 결론 나올 듯
2009년부터 기재위 등 정치권에서 '고용추가' 압박
역대 한은 수장들 "목표 상충 어려워, 신중해야" 방어태세
최근 필립스 곡선도 깨져 추가 압박 커져
[파이낸셜뉴스] 한국은행이 외부 용역을 맡겨 주요 책무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최근들어 정치권에서 연달아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하는데다 고용시장이 열악해진 결과다. 물가가 올라야 고용시장이 좋아진다는 필립스 곡선도 깨졌다.
■한국은행, 교수진 4명에 ‘고용 안정’ 용역
9일 한은과 금융권, 학계 등에 따르면 한은은 주요 책무에 ‘고용안정’을 책무에 추가하는 방안에 대해 학계에 용역을 맡겼다. 용역 수행 대상은 거시경제와 고용노동분야에 밝은 교수 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연구에 외부 연구진이 참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거시 정책에 고용 안정과 관련된 이슈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은의 정책 목표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자는 시도는 지난 2010년을 전후해서 정치권에서 줄기차게 나온 지적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2월 당시 최경환 의원은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에 물가안정외에도 고용과 금융 안정 등이 반영돼야 한다”며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물가정책과 고용안정정책을 한번에 추진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대다수 중앙은행은 물가상승을 감안한 적정 인플레이션 수치를 유지하는데 목표를 둔다. 바꿔 말하면 물가가 과도하게 오르지 않도록 돈을 푸는 속도를 조절한다는 얘기다. 고용은 반대다. 돈을 풀면 경기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게 통설이다. 이렇게 하면 물가 안정 목표를 함께 추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은은 물가정책과 고용안정 목표 자체가 상충되는 만큼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중이라는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은 여러가지 지표들이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화지표보다는 여러 고용지표를 고려해 통화정책에 포함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성장률 추이 속에서 전통적인 고용안정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은만큼 구체적인 결론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롬 파월, 제닛 옐런 등 고용 이슈에 거침없어
한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 중앙은행은 주요 정책 목표에 고용을 추가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정책 목표에 최대고용과 물가안정, 적정장기자율 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물가상승률 목표를 단순 목표지로 고정하지 않고 평균물가상승률(AIT)을 적용해 유연한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고용 지표와 관련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경우도 많다. 제닛 옐런 미 재무장관(전 연준 의장)은 지난달 18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월 미국 공식 실업률은 (6.3%가 아니라) 10%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도 “노동통계국의 오류를 바로잡으면 1월 실업률이 10%정도일 것”이라며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용 시장이 악화되는데도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에만 신경쓸 수는 없다”면서 “한은도 미국 연준이나 독일의 분데스방크처럼 고용에 입각한 거시정책에 신경쓰고 고용문제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한은 총재 고용안정 관련 발언들>
2008년 6월
이성태 한은 총재 “성장과 고용에도 관심 가지는 균형감각이 요구된다”(한은 창립 58주념 리셉션)
2012년 9월
김중수 총재 “중앙은행 역할중 고용 안정은 고려 대상 아냐”
2014년 4월
이주열 총재 “성장이나 고용에도 통화정책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취임식)
2016년 3월
이주열 총재
“고용안정은 경제정책의 지향점, 다수 중앙은행, 고용안정을 중요 고려요소 삼아”(경제동향간담회)
2018년 4월
이주열 총재 “고용안정 추가 방안 검토중, 목표 상충 가능성 조심스럽다”
한은, 왜 용역까지 맡겼을까
한국은행이 정책목표에 ‘고용안정 추가’ 용역을 맡긴 배경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고용지표가 좀체로 나아지지 않는데다, 최근 정치권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엔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오래된 통설이 깨지면서 한은도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할만한 환경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어느정도까지는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얘기다.
■여·야,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같은 법안 4개 발의
9일 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에선 최근 여·야 모두 같은 내용의 한국은행법 일부 개정법률안(한은법 개정안) 발의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성걸 국민의 힘 의원,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개정안을 들이댔다.
각각 법안을 발의 했지만 핵심 목표는 동일하다.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유사한 개정안이 그동안 여러번 발의됐다. 2012년(문병호 민주통합당 의원), 2015년(정희수 새누리당 의원) 등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
한은 입장에선 개정안이 발의될 때마다 방어적 태도를 취해왔다. 물가를 잡으면서 고용안정을 취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 안정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물가안정과 고용안정 목표는 상충되기 때문에 신중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방어해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고용이 안정되려면 물가 또한 오르게 된다는 오래된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론이 ‘필립스 곡선’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실업률은 낮아진다는 경제 이론이다. 한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는 대체로 음의 관계를 보이나 상관관계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용안정 명시하고 지표설정 분명해야” vs “물가 고용 두 마리 토끼 어떻게 잡나”
고용 안정 추가를 둘러싼 찬반 논의는 팽이다. 일부 학자들은 우호적이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고용안정을 주요 역할로 포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 미 연준의 경우 물가가 목표치인 2% 넘어도 금리 높이지 않는 평균물가목표제(ATI) 도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야 의원들이 관련 한은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면서 고용안정 책무를 추가하는 움직임은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한은의 설립 목적은 한은법 제정 당시에는 물가 안정 하나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에는 금융 안정 목표가 추가됐다. 현재 코로나19를 계기로 고용안정도 추가해야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태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안정이 기본적으로 경기나 성장률과 관련된 것인데 현재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에도 경기를 고려하는 것을 감안하면 암묵적으로 고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명시적으로 해 고용안정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다만 이를 위한 분명한 지표 설정과 보완적인 제도가 수반될 필요가 있고 금통위가 물가와 고용 등을 판단할 때 독립성을 갖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앙은행이 고용안정 역할을 한다고 해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앙은행이 고용안정 역할을 하는 국가들도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고 통화정책에 혼란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은 내부에서도 고민은 큰 상태다. 한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고용이 부진한 경우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하지만, 최근 과도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흘러들어가면서 고용안정을 위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는 데 대해 금융안정 우려가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고용안정을 위해 어떤 지표를 참고할지, 또 고용을 위한 수단은 금리 정책이 중심일수 밖에 없는데 이와 관련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을 볼 수 있는 제도나 보조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장률을 감안하면서 각종 고용지표를 반영하는 게 필요한데 실업률 지표 등 명확하지 않은 고용통계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의 고용안정 역할 관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올해 신년사에서 "상충 가능성이 있는 여러 목표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국내외 연구결과 및 사례를 참고하는 한편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경청해 우리 여건에 맞는 최적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통화정책 운영체계의 개선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영·호주 ‘고용안정’ 명시 vs EU·일·대만 ‘명시 X’
해외의 경우 일부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에 고용안정을 명시했다. 우선 미국의 연방준비법을 보면, 최대고용, 물가안정, 적정장기이자율 등 3가지 목표가 목적조항으로 실려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최대고용과 물가안정 목표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질 때까지 매월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호주도 중앙은행법에 통화가치 안정, 완전고용 유지, 경제번영과 복지 등 3가지를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 또한 목적조항에 정부의 경제정책 지원 등 고용을 명시했지만,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하위목표로 설정됐다.
반면 고용안정이라는 문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해외 중앙은행도 여럿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안정을 주목표로 삼고 있다. 하위목표로 유럽연합의 경제정책 지원이 있지만, 영란은행과 달리 고용이 명시돼 있지는 않다. 일본은행과 대만은행 역시 정부정책과의 조화를 명시했지만 고용을 구체적으로 넣진 않았고, 금융안정과 물가안정만 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정치권 한은법 개정 시도 일지(고용 안정 관련)>
2009년 2월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 “물가안정 외 고용, 금융안정 등 반영돼야” 개정 필요성 논의
2012년 7월 문병호 민주통합당 의원 “한은법 제1조 목적사항에 ‘일자리 확대’ 추가”
2015년 8월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 “한은 설립목적에 고용안정 책무 규정”
2016년 10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은 고유 책무에 적정인구 유지, 고용안정 목적 추가”
2018년 9월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은 목적에 고용확대 추가, 금통위 구성에 노동계와 소비자단체 포함”
2020년 10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0년 11월 박광온 더불어 민주당 의원, 류성걸 국민의 힘 의원 각각 개정안 발의
2021년 3월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정안 발의
[email protected] 김성환 연지안 이용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