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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800명이 기립박수를 쳤죠" 모발 이식 대중화 1세대, 김대용 원장의 '완벽한 집념'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김현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모발 이식 경력 26년, 김대용 압구정연세의원 원장을 만나다]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할 때 그것은 상실을 불러옵니다. 우리에게 깊고 무거운 상실을 일으키는 존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탈모. 탈모를 바로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해 탈모 치료 1세대 개척자인 의학박사를 시작으로 100인의 탈모 전문가를 만납니다. '탈모'라는 두 글자 뒤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 주]

/디자인=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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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어떤 집념은 우아하다. '의사 김대용'의 집념이 그랬다. 모발 이식 대중화 1세대이자 모발 이식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는 오직 '완벽하고 안전한 수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지난 26년을 정진해 왔다. 수술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하기 위해 자진해서 인력을 늘렸고, 전에 없던 수술 도구를 만들고자 을지로를 헤맸다. 좋은 기술은 돈을 받지 않고도 교과서에 실어 학생들이 익히도록 했으며 동료들이 의사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악역도 마다치 않았다. 부와 명예가 아니라 학문과 사람을 향한 집념. 그것은 오직 우아하다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었다.

지난 15일 김대용 압구정연세의원 원장을 만나 27년의 발자취를 들어봤다.

성형외과 전문의 경험으로 모발 이식에 새로운 가이드 정립... 내친김에 교과서 집필까지

압구정연세의원 김대용 원장/사진=파이낸셜뉴스
압구정연세의원 김대용 원장/사진=파이낸셜뉴스

― 모발 이식 1세대로 불리더라. 의사 김대용을 모발 이식계의 '대부'라고 칭하는 사람도, '대모'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발 이식은 언제 시작했나.
▲ 모발 이식 분야를 '개척'한 사람은 아니다. 경북대학교 김정철 교수와 김 교수의 후학들이 모발 이식을 먼저 시작했다. 나는 성형외과 전문의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개원 10년차 즈음인 2000년에 동료의 권유로 하와이에서 열리는 '국제모발이식학회(ISHRS)'에 참석하게 됐고, 흥미를 느껴 모발 이식을 시작하게 됐다. 다만 당시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모발 이식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대중화' 부분에서는 초창기 멤버라고 할 수 있겠다.

―설명한 것과 같이 당시 모발 이식은 매우 낯선 수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적응했다고 들었는데, 성형외과 전문의이기 때문인가.
▲ 맞다. 모발을 '이식'하는 수술이 아닌가. 성형외과에서 이식은 흔하게 이루어진다. 코 수술을 할 때 귀 연골을 이식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나. 흉터에 피부를 이식하는 경우도 있다. 모발 이식은 이렇듯 다양한 이식 수술 기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수술이다.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또 초창기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한 면도 있다. 당시에는 500모, 1000모 등 지금에 비하면 소량을 이식했다. 천천히 수술 규모를 키웠다. 지금은 한 번에 8000모까지도 한다.

―성형외과 수술법을 바탕으로 '흉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수술 방법'도 개발했다.
▲ 모발 이식은 흔히 '절개식' '비절개식'으로 나눈다. 절개식은 이식할 모발과 그 아래의 피부를 일정 크기로 떼낸다. 모내기로 따지자면 '판'을 이동시키는 셈이다. 반면 비절개식은 모낭을 하나하나 채취해 이식을 준비한다. '벼'만 뽑는 것이다. '흉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수술 방법'은 절개식에 사용한다. 피부를 떼낸 자리를 봉합할 때 봉합 부위의 모낭과 기름샘 등을 보존하면, 상처도 잘 아물고 흉터 위로 모발이 자라 흉터를 가리는 원리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 의사들이 이 수술에 칼이 아니라 가위를 쓰고 있더라. 모낭과 기름샘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봉합 부위 피부의 상피만 예리하게 벗겨야 하는데, 가위는 투박하기 때문에 모낭을 살릴지언정 자칫 기름샘을 훼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봉합 부위로 기름이 흘러나와 상처가 곪는다. 그래서 성형외과 수술에서 활용하던 도구를 모발 이식에 사용했다. 주사기의 몸통에 칼을 구부려서 넣은 도구인데, 이 도구를 활용하면 피부를 0.1mm 두께로 벗길 수 있는데다 가위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층 쉽고 정확하며 우아하다(웃음).

―해당 수술 방법은 미국 모발 이식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이 수술법을 2008년 몬트리올 국제모발이식학회에서 소개했다. 개회사 다음에 발표를 시켜주더라.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고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쉬고 있었는데, 미국 모발 이식 교과서를 만드는 한 할아버지가 '컨트리뷰터(Contributor)'를 하라고 제안했다. 대가 없이 책을 쓰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대가 없이 쓰고 고치기를 1년 넘게 반복했더니 책이 나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지금 그 책은 많이 낡았다. 환자들이 올 때마다 꺼내서 수술 방식을 설명할 때 썼다.

방탄유리로 만든 도마, 10인 협업 수술 시스템... 모발 이식의 '판'을 바꾸다

―수술 방법 외에도 모발 이식 시스템이나 도구 등을 개발한 걸로 알고 있다.
▲모발 이식 과정 중에는 채취한 모낭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분리하는 과정이 있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고개를 숙이고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목, 어깨, 팔꿈치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편안한 자세로 일할 수 있도록 '고배율 디지털 영상 현미경'을 도입했다. 20배 확대된 대형 화면을 보며 모낭을 분리하는 것. 다만 화면을 활용하면 현미경을 통해 두 눈으로 관찰할 때보다 입체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조직을 잘게 분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모낭을 분리할 때 사용하는 도마도 제작했다. 보통은 나무 위에서 모낭을 분리하는데, 나무는 칼질을 할 때마다 모낭에 나무 부스러기가 묻을 수 있고, 물을 흡수하는 특성상 신선하게 유지돼야 할 모낭까지 건조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대체할 재료를 찾다 폴리카보네이트라는 방탄유리 소재를 알게 됐는데, 분자식이 길어 조각이 나올 위험이 적은 데다 모낭도 촉촉하게 유지되는 장점이 돋보였다. 그 길로 을지로를 찾아 모낭 분리용 도마를 제작했다.

―그 도마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도마가 빠른 모발 이식이나 대량 모발 이식에 기여한 면도 있나.
▲맞춤 제작한 도마는 가운데에 모낭을 분리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있고 양쪽에 작은 우물이 있다. 가운데에서 모낭을 분리한 후 바로 우물에 빠뜨리면 모낭이 손상될 새가 없다. 빠른 모발 이식과 대량 모발 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중에는 모낭 분리 속도와 신선도 등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컴팩트'한 도마가 분명히 도움이 되겠다.

그렇지만 모발 이식을 빠르게, 많이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능숙한 기술을 가진 인력이 풍부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 병원의 모낭분리사 중에는 25년 경력자가 있고, 한 수술에 그 경력자를 포함한 10명의 인력이 투입된다. 모낭분리사 6명, 모낭을 두피에 심을 수 있도록 식모기에 재는 인력 4명, 의사 옆에서 수술 부위의 시야를 확보하고 기타 과정을 돕는 인력 1명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투입하면 1시간에 몇 모를 심을 수 있나.
▲1시간을 기준으로 1800모낭, 모발로는 3600모를 심었다. 실제 수술 장면을 편집 없이 연속으로 촬영하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은 후 2011년 미국 국제모발이식학회에서 발표도 했다. 그런데 이게 알려졌는지 미국 모발 이식 전문의 시험 예상 문제에 나와 관련한 문제가 나왔더라. '세상에서 모발을 제일 빨리 심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고 정답은 '닥터 킴'이었다. 바로 나다.

"숨겨진 절단율을 밝히다" 학계에 경종을 울린 하나의 사건

―이 수술법에 대한 발표도 학회에서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지만, 이보다 더 주목받은 발표가 있다고 들었다.
▲있다. 2015년 국제모발이식학회에서 '숨겨진 절단율'에 관해 발표했다. 비절개 방식의 모발 이식을 할 때, 모낭을 하나하나 채취한다고 하지 않았나. 두피 속을 알 수 없으니 모발이 자란 방향만 보고 원통형의 칼을 두피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렇게 모낭을 밖으로 꺼내보면 다쳤을지언정 손상되진 않았을 거고, 그러다 보니 의사들 중에 절단율을 1% 혹은 3%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비절개 방식으로 모낭을 채취해 보니 칼이 들어갈 때 '툭'하고 무언가 칼에 닿는 느낌이 명백하게 들더라. 옆에 있는 모낭을 건드렸다고 확신했다. 모발이 30도 정도 누워서 자라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각도를 두피 밖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조절하겠나. 그래서 서양 의사들의 절단율을 조사했다. 20명의 의사들이 내게 절단율을 보내줬다. 절단율이 30%, 40%에 달하더라. 나 역시도 현미경을 통해 절단율을 일일이 확인했다. 절단율 1%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의사들이 싫어하지 않던가. 학계에서 반응은 어땠나.
▲ 사실 폭로에 가까운 발표였다. 그런데 당시 국제모발이식학회에 참석한 800여 명의 의사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해외에서 온 의사 친구들도 나에게 "닥터 킴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마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족적을 들어보니 모든 과정이 명쾌하고 시원하다. 확실하게, 솔직하게, 깔끔하게 연구를 이어온 듯한데. 앞으로 '확실하게' 이루고 싶은 부분은 없나. 후학을 양성한 다든지. 계획이 궁금하다.
▲꼰대짓 할 필요가 없다. 요새 누가 좋아하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있다. 확실하게,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도 기술이지 않겠나. 잘 사라지고 싶다.

kind@fnnews.com 김현선 기자


#모발 이식 #김대용 원장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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