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남편, 거실의 수상한 녹음기...아내는 왜 선을 넘었나 [사건실화]
남편 외도 의심해 휴대전화 몰래 열고 계좌서 83만원 이체
거실에 녹음기 설치해 가족·지인 대화까지 무단 녹음
法 "사생활·통신비밀 보호 침해...죄책 무거워"
[파이낸셜뉴스] "이 인간, 진짜 바람 피우는 거 아냐? 이번엔 꼭 증거를 찾아야 해."
새벽 시간, 남편 김모씨(35)의 휴대전화에서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곁에서 잠들어 있던 남편을 확인한 아내 이모씨(34)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이씨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잠금 패턴을 입력해 화면을 연 뒤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다.
화면에는 남편이 지인 손모씨와 주고받은 메시지 등이 담겨 있었다. 이씨는 대화 내용을 하나씩 열어본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화면을 촬영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아내의 행동은 단순히 휴대전화 속 사적인 대화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고충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컴퓨터등사용사기, 정보통신망법 위반, 전자기록등내용탐지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건은 2024년 7월 8일 새벽 서울 강동구에 있는 부부의 집에서 벌어졌다.
남편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알림이 도착하자 이씨는 남편이 잠든 틈을 이용해 잠금화면을 해제했다. 휴대전화 잠금을 푼 이씨는 카카오톡을 확인한 뒤 곧바로 금융 애플리케이션(앱)에도 손을 댔다. 이씨는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미리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입력해 로그인했다. 이어 남편의 공동인증서 비밀번호와 계좌 비밀번호까지 차례로 입력했다.
이날 오전 5시32분께 이씨는 남편 명의 은행 계좌에서 자신의 카카오톡 계정으로 50만2163원을 간편이체했다. 계좌번호 대신 카카오톡 계정을 입력한 뒤 상대방이 입금 신청을 하면 이체가 완료되는 방식이었다.
불과 1분 뒤인 오전 5시33분께에는 또 다른 금융 앱에 접속했다. 이씨는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에 33만5168원을 송금했다. 이씨가 남편 계좌에서 자신의 계정과 계좌로 옮긴 돈은 모두 83만7331원이었다.
법원은 이씨가 권한 없이 금융정보를 입력해 정보처리장치로 하여금 금융 거래를 처리하게 하고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남편의 휴대전화와 금융 앱을 이용한 행위는 정당한 접근 권한 없이 타인의 정보통신망에 침입한 행위에도 해당한다고 봤다.
이씨의 '이상 행동'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남편의 외도 증거를 추가로 확보하려던 이씨는 2024년 7월 9일 부부가 함께 생활하던 집 거실에 자동음성감지 녹음기를 설치했다. 주변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자동으로 작동해 대화를 녹음하는 기기였다. 남편은 물론 대화 상대방 누구에게도 녹음 사실을 알리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녹음기는 같은 달 14일께까지 약 닷새 동안 집 안에서 오간 여러 사람의 대화를 담았다. 남편과 그의 아버지가 나눈 대화뿐 아니라 남편과 지인들 사이의 대화, 남편과 자녀들의 대화까지 녹음됐다. 남편의 부모가 서로 나눈 대화도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씨가 녹음한 것은 자신이 직접 참여한 대화가 아니었다. 법원은 이씨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녹음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녹음기 사진 5장과 이체 내역서, 이씨가 촬영하거나 내려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녹음기 설명서와 기능 표시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남편의 경찰 진술조서와 고소 보충의견서도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결국 이씨는 법정에서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의심한 나머지 남편의 사적인 영역을 연달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의심해 몰래 사적인 대화 내용 등을 열람·녹음하고, 권한 없이 피해자의 은행 계좌 등으로부터 돈을 편취했다"며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범행은 헌법이 정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비밀의 보호를 침해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그 죄책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씨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일련의 범행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그쳤고,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에도 일부 고려할 사정이 있다고 봤다. 이씨가 이전까지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도 반영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해 이씨에게 징역 10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되, 징역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