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배우자가 AI와 사랑에 빠졌다"...정서적 외도도 이혼 사유 될까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현행법상 AI는 '상간 상대' 될 수 없어...부정행위 적용엔 한계
부부관계 외면·언어폭력 이어지면 혼인파탄 사유 가능성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배우자가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연인처럼 대화하며 현실의 부부관계를 외면하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AI 외도'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현행법상 AI와의 정서적 교류만으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과도한 몰입으로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거나 정서적 학대가 발생했다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법조계 분석이 나온다.

29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생성형 AI와의 관계를 둘러싼 연인·부부 간 갈등 사례가 다수 등장하면서 법적 쟁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남편이 생성형 AI와 연인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논쟁이 일었다. 글쓴이는 남편이 AI에 별도의 애칭을 붙인 뒤 "아내보다 네가 더 좋다" "AI의 실체를 만들어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AI와의 대화가 일종의 역할극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실제 사람이 아닌 AI와 나눈 대화인 만큼 외도로 볼 수 없다는 의견과 배우자 몰래 AI에 사랑을 표현하고 현실의 부부관계보다 정서적으로 의존했다면 '정서적 외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현행 민법에는 AI와의 정서적 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조항이나 이를 이혼 사유로 규정한 대법원 판례가 없다. 민법 제840조는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악의적인 이혼 거부, 부당한 대우 등을 법률상 이혼 사유로 규정한다.

다만 기존의 '부정행위'는 통상 불륜 등 배우자가 제3자인 사람과 부부의 정조 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행위를 한 경우를 전제로 판단돼 왔다.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아닌 AI를 상간 상대방으로 보거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구조다.

대신 AI에 대한 몰입의 정도와 그로 인해 부부 공동생활이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따져 민법 제840조 제6호가 규정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다툴 여지는 있다. AI에 대한 의존이 종교나 무속, 음란물·게임 등에 과도하게 몰입해 가정생활을 방치한 경우와 유사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나아가 AI에 심취해 배우자를 지속적으로 비하하거나 대화를 거부하는 행위는 언어폭력이나 정서적 학대로 평가돼 같은 조 제3호의 '배우자의 심히 부당한 대우'에 해당하는지도 함께 검토될 수 있다.

김태연 태연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해 부부간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AI와의 정서적 관계를 부정행위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향후 AI가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발전하고 관련 판례가 누적된다면 법원의 해석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해외에서는 AI와의 관계를 제도와 규제의 영역에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AI와의 관계를 혼전계약상 외도 조항에 포함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사례가 등장했고, 중국은 AI 챗봇이 이용자의 과도한 정서적 의존을 유도하거나 미성년자와 가상 연애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방식의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AI 과의존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는 "AI를 하나의 동반자처럼 활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지만 이용자가 독립성을 잃고 정서적으로 종속되는 단계는 경계해야 한다"며 "특히 청소년이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와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 #AI 외도 #언어폭력 #정서적 학대 #이혼 사유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