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금부자들의 놀이터
대출을 끌어모아 부동산을 취득하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옛말이 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을 선언하면서 끌어모을 영혼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이들이 이제는 내 집 마련도 운에 걸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23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자가 은행권의 대출한도 축소로 잔금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호소했다. 이에 대통령이 즉각 점검을 지시했고 집단대출은 총량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한 소식이지만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은 말문이 턱 막힐 뿐이다. 무주택 상태로 2~3년 전 청약에 당첨된 한 신혼부부는 자금을 차곡차곡 모아왔지만, 최근 잔금대출을 끝내 받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분양권을 팔았다. 토론회가 며칠만 당겨졌다면 이들도 꿈꾸던 신축 아파트 입주를 무사히 마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히 운이 좋지 않았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현금부자들만의 놀이터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전세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규제로 잔금이 부족한 신축 아파트 집주인들은 전세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는 현금부자만 세입자로 들일 수 있다. 또 수많은 무주택자들은 전세 매물 가뭄에 대출까지 막히면서 다달이 지출이 큰 '월세 갈아타기'를 택하고 있다. 보증금이나 월세 등 부족한 종잣돈은 주식으로 뻥튀기하려는 청년들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한 아이돌 멤버의 강남권 아파트 '로또 청약' 당첨 소식이 청년들에게 씁쓸함을 남긴 것은 청약 제도마저 실수요자보다 자산가에게 유리한 구조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영끌'과 '운끌' 모두 여력조차 없는 가구는 시장 진입 자체가 원천 차단되고 있다. 대통령이 매수자에게 17억7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해 집을 팔게 된 배경에도 '금융 절연'이라는 정책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대출을 막는다고 수요와 주거의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땜질 처방식 규제와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무주택자와 청년들은 오늘도 각자도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이 로또에만 기대는 불건전한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대출이 이미 부동산 시장의 필수 요소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양극화에 치이는 실수요자들에게 예측 가능한 주거 금융 사다리는 운이 아니라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마스터키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