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머리에 물이 찼다고요?"..치매 오인 '정상압 수두증'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70대 이상 고령층 2%… 보행·배뇨장애, 인지 저하가 대표 징후
부산 온병원 뇌혈관센터 "조기 발견때 완치 가능한 치료형 치매"

노령층 건강을 위협하는 '정상압 수두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산 온병원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 온병원 제공
노령층 건강을 위협하는 '정상압 수두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산 온병원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 온병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년층 건강을 위협하는 숨은 뇌 질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일선 의료기관에서 두통 등의 증세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은 고령 환자들이 "뇌에 수분이 고였다"는 진단을 받고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를 돌이킬 수 없는 불치성 치매나 영구적인 뇌 손상으로 오인해 낙담하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상당수가 적기에 치료할 경우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한 '정상압 수두증(Normal Pressure Hydrocephalus, NPH)'에 해당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치료 가능형 질환'으로 꼽힌다.

2일 부산 온병원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전 고신대복음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전문적인 자문을 받아 뇌에 물이 차는 이 질환의 정확한 발병 기전과 주요 임상 증상, 정밀한 치료법 및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을 심층적으로 알아본다.

■ 뇌척수액 순환 장애가 부르는 질환, '정상압 수두증'

인체의 뇌는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이라고 불리는 투명하고 맑은 액체 속에 떠 있는 형태로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뇌실 내부에서 생성된 뇌척수액은 뇌와 척수를 순환한 뒤 체내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어야만 정상적인 압력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노화 현상이나 과거에 겪었던 뇌출혈, 뇌막염, 또는 두부 외상 등의 여파로 이 흡수 통로가 막히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 부산 온병원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은 "정상압 수두증은 뇌실 내부에 뇌척수액이 과도하게 축적되면서 주변의 뇌 조직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질환은 명칭 그대로 뇌압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지 않으면서도 뇌실만 유독 비대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일반적인 뇌압 상승 질환과는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의 역학 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고령 인구 중 약 2%가 이 질환을 앓고 있으며, 전체 노인성 치매 환자의 5%에서 최대 10%에 달하는 비율이 정상압 수두증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치매·파킨슨병과 혼동하기 쉬운 '3대 임상 징후'

정상압 수두증은 증상이 매우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의 가족들이 이를 단순한 노화 현상이나 알츠하이머병, 혹은 파킨슨병으로 오인하여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상압 수두증은 특유의 3대 임상 증상이 복합적으로 발현됨에 따라 의학적인 의심과 함께 정밀 진단이 필수적이다.

첫째로 보행 장애는 이 질환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초기 대표 증상이다. 환자는 발을 지면에서 쉽게 떼지 못한 채 질질 끌며 걷거나 보폭이 현저히 좁아져 종종걸음을 걷게 된다. 이로 인해 균형 감각이 떨어져 낙상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둘째로 인지 기능 저하는 치매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기억력과 집중력, 그리고 판단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전반적인 무기력증을 동반하게 된다.

셋째로 배뇨 장애가 나타난다. 소변을 원활하게 참지 못하는 요절박 증세가 생기거나, 화장실에 미처 도달하기 전에 배뇨 실수를 하는 요실금 증세가 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 수술적 치료를 통한 극적 호전 가능.."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정상압 수두증이 의료계에서 희망적인 질환으로 평가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는 달리 수술적 치료를 시행할 경우 환자의 증상이 극적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외과 의료진은 우선 뇌 MRI 및 CT 검사를 통해 환자의 뇌실 비대증 유무를 확인한다. 그 후, 요추 천자를 통해 뇌척수액을 일부 인위적으로 배출했을 때 환자의 보행 능력이나 인지 기능이 일시적으로 개선되는지 면밀히 살피는 이른바 '배액 테스트(Tap Test)'를 거쳐 최종적인 수술 적응증을 판가름하게 된다.

만약 정밀 진단을 통해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과도하게 축적된 뇌척수액을 복강 등 신체의 다른 부위로 안전하게 배출시키는 '뇌척수액 단락술(Shunt Surgery)'을 시행해 뇌에 가해지는 압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게 된다.

온병원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거동에 불편함을 겪거나 인지 기능 저하를 보일 때 이를 단순히 나이가 드셔서 생기는 현상으로 치부해 방치한다면, 뇌신경 손상이 영구적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일선 병원에서 뇌에 수분이 고였다는 소견을 들었다면 지체 없이 신경과 및 신경외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뇌혈관 질환 특화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상압 수두증의 예방과 관리를 위해서는 적기 정밀 검진이 중요하다. 고령자에게 보행 장애, 인지 장애가 동시에 동반될 경우 뇌 MRI 촬영을 통해 뇌실 상태를 조기에 확인해야 한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 등 뇌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위험 요인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두부 외상은 뇌척수액 순환 장애를 촉발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될 수 있으므로 낙상사고 등 실내 안전사고 예방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email protected]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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