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지지부진 주가에 조기상환 요청 '봇물'[fn마켓워치]
[파이낸셜뉴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전환사채(CB) 투자자들의 잇단 조기상환 요구에 직면했다. 증시 자금이 반도체 등 일부 업종으로 쏠리면서 바이오주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자 CB를 주식으로 바꾸는 대신 원리금을 돌려받겠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일부 기업은 발행 물량의 80%까지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이 들어오면서 현금 확보와 차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젠바이오, 마이크로디지탈, 루닛, 삼성제약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수년 전 발행한 CB 등 메자닌 채권에 대한 풋옵션 행사 비율이 최대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풋옵션이 집중되는 배경에는 전환가액을 크게 밑도는 주가가 있다. CB 투자자는 주가가 전환가액을 웃돌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전환가액 아래에 머물면 주식으로 전환할 유인이 떨어져 조기상환을 통해 원리금을 회수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삼성제약의 경우 지난해 8월 발행한 269억원 규모 CB에 대한 풋옵션 행사 비율이 70.26%에 달했다. 회사는 오는 21일 투자자들에게 풋옵션 행사 물량에 해당하는 189억원을 현금 상환해야 한다. 해당 CB의 주식 전환가액은 1591원이지만 지난달 말 삼성제약 주가는 1239원에 그쳤다.
마이크로디지탈의 상황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24년 9월 발행한 85억원 규모 CB 가운데 76.47%에 대해 풋옵션이 행사됐다. 이에 따라 회사는 다음달 9일 약 65억원을 투자자들에게 상환해야 한다. 해당 CB의 전환가액은 주당 9691원이지만 현재 주가는 2000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가가 전환가액의 5분의 1 수준까지 밀리면서 주식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엔젠바이오는 풋옵션 행사 비율이 80%에 달한다. 지난 2024년 6월 발행한 5년 만기 30억원 규모 CB 가운데 24억원이 조기상환 대상으로 돌아왔다. 회사는 오는 9월 14일 해당 금액을 현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엔젠바이오 역시 전환가액과 현재 주가 사이의 간극이 크다. CB의 주식 전환가액은 주당 6423원이지만 엔젠바이오 주가는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 1621원까지 떨어졌다. 전환가액 대비 약 75% 낮은 수준이다.
루닛도 CB 투자자의 54%가 조기상환을 요구했고, 엠젠솔루션과 에이치엘비바이오스텝의 풋옵션 행사 비율도 각각 33.3%, 30%에 달했다. 이들 역시 주가가 CB 전환가액을 밑돌면서 주식 전환보다 투자금 회수를 택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대규모 풋옵션이 바이오기업의 현금 유출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CB는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돼 상환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주가가 전환가액을 밑돌 경우 만기 전에 현금으로 되갚아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연구개발(R&D)과 임상 등에 지속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빠른 CB 상환이 유동성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유 현금으로 상환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CB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차환에 나서야 해 추가적인 자금조달 부담도 불가피하다.
결국 바이오주 부진이 CB 투자자들의 '조기 엑시트'로 번지면서 기업들의 자금줄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주가 하락의 청구서가 대규모 CB 현금상환으로 돌아오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유동성 관리에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김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