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헬스키친' 손승연·박혜나 하드캐리…앨리샤 키스 명곡과 폭발적 가창력의 시너지[이 공연]
[파이낸셜뉴스] "이건 뮤지컬인가, 콘서트인가."
그래미 17관왕 싱어송라이터 앨리샤 키스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헬스키친'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극과 노래의 경계가 분명하면서도 음악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해 때로는 성스루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키스의 히트곡들이 마치 처음부터 이 작품을 위해 쓰인 것처럼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이야기를 전개하다 돌연 노래를 시작하는 뮤지컬 특유의 미묘한 이질감은 거의 없다. 대사에서 노래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만큼 매끄럽다. 덕분에 서사를 입은 새로운 형식의 콘서트처럼 다가온다.
무엇보다 키스의 강렬한 음악과 한국 배우들의 미친 가창력에 힘입어 160분 동안 객석을 미국 뉴욕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힘.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브로드웨이 공식 개막일이 2024년 4월 20일이니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지난달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헬스키친'은 전 세계 최초의 라이선스 프로덕션이자 최초의 비영어권 공연이다.
'헬스키친'은 앨리샤 키스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반(半)자전적 작품이다. 키스는 프로듀서로 참여해 음악과 가사, 편곡 등 음악 작업 전반을 이끌었고, 기존 히트곡에 여러 신곡을 더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90년대 뉴욕 헬스 키친이다. 엄마의 과보호가 답답하기만 한 17세 소녀 앨리가 음악을 만나 자신의 목소리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키스의 인생을 고스란히 옮긴 자서전은 아니지만, 뉴욕에서 성장하고 음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 그의 경험과 감정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음악이다. '폴린(Fallin')', '이프 아이 에인트 갓 유(If I Ain't Got You)', '노 원(No One)', '걸 온 파이어(Girl on Fire)',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 등 앨리샤 키스의 대표곡들이 극의 감정선을 따라 새롭게 편곡돼 흐른다.
국내 초연도 이런 음악의 힘을 제대로 살렸다. 지난 5일 공연에서 앨리 역의 손승연과 엄마 저지 역의 박혜나는 사실상 작품을 하드캐리한다. 손승연은 폭발적인 성량과 소울풀한 음색으로 방황하는 10대 소녀 앨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고, 박혜나는 딸을 향한 사랑과 불안을 함께 품은 싱글맘 저지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
댄스 앙상블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기존 뮤지컬에서 춤이 노래를 보조하는 데 머물렀다면, '헬스 키친'에서는 스트리트 댄스를 기반으로 한 앙상블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볼거리가 된다. 뉴욕 거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스웨그를 살린 군무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객석의 흥까지 끌어올린다.
성장 서사 자체는 다소 무난하다. 반항적인 10대 소녀는 첫사랑에 빠지고,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맨해튼 플라자의 '엘링턴 룸'에서 평생의 멘토를 만나 음악에 눈을 뜬다. 동시에 음악 밖에 모르는 철부지 아버지와 다시 만나면서 자신을 통제하려는 엄마의 깊은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다.
작품의 감정적 절정은 엄마 저지에게서 나온다. 그는 한순간의 사랑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된 여성의 후회와 책임, 그리고 딸만큼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앨리샤 키스의 노래에 실어 토해낸다. 저지가 여전히 무책임한 남편 데이비스를 찾아가 딸에게서 물러서라고 경고하며 부르짖는 '폰 잇 올(Pawn It All)'은 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엄마와 딸이 화해하며 부르는 '노 원(No One)'은 강한 여운을 안긴다. 2007년 앨범 '애즈 아이 엠(As I Am)'에 수록된 이 곡은 원래 연인 사이의 굳건한 사랑을 노래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조금 삐걱거리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결국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존재는 엄마와 딸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태어난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는 공연의 백미다.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겠다는 앨리의 포부와 작품 전체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한국어 가사로 다시 태어난 익숙한 멜로디는 객석을 뜨겁게 달궜다. 커튼콜까지 열광적인 분위기가 이어졌으며, '귀가송'처럼 연주된 라이브 밴드의 자유로운 드럼 연주는 객석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발걸음을 뒤돌리게 했다.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평일 저녁인데도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가득 찼다. 그야말로 앨리샤 키스의 이름값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버라이어티와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의 평가처럼 앨리샤 키스의 명곡이 뮤지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오는 11월 8일까지 GS아트센터.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