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개헌보다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강성 지지층만 쳐다보는 거여
절충·타협 포기한 채 입법 폭주
검찰 보완수사권도 전면 폐기
정치 양극화의 피해는 국민 몫
폐해 줄이려면 다당제가 나아
개헌 앞서 선거법 먼저 고쳐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말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처리했다.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이후 여권 내에서 "최소한의 보완수사권은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얼마간 힘을 받았다.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일말의 양심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날 당내 강경파의 큰 목청에 속절없이 파묻혔다. 24시간 만에 강제 종료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허망했다. 거여가 연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의 단역 명단처럼.
검찰 개혁이란 한배를 탄 여권 안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인사들이 적잖았다. 홍기원 의원 등은 범죄 피해자들을 불러 그런 취지의 토론회를 열었다. 정성호 법무장관도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과 관련, "검찰의 보완수사로 살인범의 성범죄 의도를 밝혀냈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 선거전에서 강성 당원들이 결집하자 수사권 유지 주장은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여론도 보완수사권은 유지하자는 쪽이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형소법 개정을 밀어붙이면서 야당 몰래 '법원의 공소기각 사유'에 '위법 수사' 등을 끼워 넣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줄이려는 꼼수란 의심까지 샀지만, 대가는 잠재적 범죄 피해자인 국민이 치르게 된다. '탈레반 당심' 앞에서 합리적 의견은 설 땅을 잃은 꼴이다. '내 편 아니면 틀린 것'이 될 만큼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양극화의 폐해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감지된다. 육해공 3군 사관학교 통합이 단적인 사례다. 군 안팎 전문가들은 물론 해사·공사가 있는 창원(진해)·청주 지역민을 포함한 국민 여론도 부정적인 데도 밀어붙이고 있으니 그렇다. 애초 합동성 강화 등 명분을 내세웠지만 구실일 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육사의 쿠데타 책임'을 직접 언급하면서 '육사 지우기'나 '육군 힘빼기'가 진짜 속내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통합 사관학교 건설에 소요될 막대한 예산은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시행착오로 인한 안보 누수 등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아닌가.
국회 미래연구원은 지난 2023년 정치 양극화의 한국적 특성을 13가지로 집약했었다.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가 그중 첫손가락에 꼽혔다. '정당 내 파벌 양극화'가 그다음이었다. 현시점에서 보면 어느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 각 정당은 사회 전반의 제반 갈등을 생산적으로 관리·조율하는 순기능을 이미 상실했다.
더욱이 진보·보수 대립을 넘어 진영 내부의 다양성마저 약화됐다. 중도가 줄면서 진영이 양극단으로 이동한 결과다. 그러니 같은 진영 안에서도 의견이 다르면 척결 대상 세력으로 규정된다. 실제로 민주당 대표를 뽑는 선거전이 사활을 건 '오징어 게임' 양상으로 펼쳐졌다. 친명(친이재명) 색채가 강할 뿐인 김민석·송영길 후보와 정청래 후보 지지층 간 오가는 '문조털래유'니 '한강새똥돼주길'이니 하는 멸칭이 그 편린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무소속 한동훈 의원계 간 반목과 삿대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막을 대안은 뭔가. 학계는 대체로 개헌이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본다. 다만 거여가 입법 폭주 중인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란 지적도 많다. 국민 기본권 강화가 아닌, 권력 개편에 집중된 개헌 논의는 정쟁을 극단화할 소지가 커서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제기한 '대통령 연임 개헌론'이 그 실례다. 말로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했지만, 기실은 친명 지지층의 요구에 맞춘 그의 개헌 애드벌룬은 역풍만 불렀다. 국민이 원하는 여야 합의 개헌 여지를 좁혀버렸으니….
그런 맥락에서 국내 정당이 제구실을 하려면 거대 양당의 독점 구도부터 깨야 한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예컨대 "다당제적 요소를 강화해 거대 양당 중심의 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시민의 요구가 정치 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열린 공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조화순 연세대 교수)는 지론은 공감할 만하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뒤 두 달이 지났지만, 여야가 올림픽공원에서 참정권 보장을 외치는 청년층의 목소리조차 장내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당제 도입은 어제오늘의 이슈는 아니다. '다수결 만능'의 주술에서 헤어나 다수의 폭정을 막자는 게 오랜 대전제였다. 그래서 정당 간 타협과 절충, 필요시 합종연횡도 가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가 양극화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개헌보다 소선거구제 폐지 등 선거법 개정이 더 시급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