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몸값 뛴 베트남...하노이에 '특급 외교관' 모인다[동남아 돋보기]
<1> 격전지 떠오른 하노이 외교가
이미연 대사 부임...외교부 내 경제 외교통
美맥나마라 대사, 한국계·용산 미군기지 근무
'차관급' 中허웨이 대사, 남중국해 문제 전문가
日이토 대사, ODA 전문가...인프라 수주 겨냥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요국들이 베트남과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하노이 외교가에 '에이스'들이 몰려들고 있다. 각국은 경제·통상, 공급망, 국경·안보, 인프라, 에너지 등 베트남을 둘러싼 각국의 핵심 이해관계에 맞춰 '맞춤형' 인사를 배치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부임한 제니퍼 윅스 맥나마라 주베트남 미국 대사에 이어 14일 이미연 신임 주베트남 한국대사가 부임하면서 한국 혈통의 여성 대사 2명이 나란히 하노이에 자리 잡게 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몸값 높아진 베트남...강대국 외교 격전지로
세계 주요국이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와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를 맺은 국가다. 경제와 안보 양쪽에서 주요국과 관계를 넓혀온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미국은 베트남을 최우선 첨단 기술 및 프렌드쇼어링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산하 하버드대 벨퍼 과학·국제문제 연구소는 올해 초 펴낸 '동맹 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베트남의 미·중 경쟁 속 중견국 전략'이란 논문에서 "미국은 베트남을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에 맞설 수 있는 잠재적인 전략적 견제 세력으로 보고 있다"면서 "미국은 반도체 협력, 디지털 인프라 지원, 국방 협력 강화 등 첨단 분야에서의 베트남과 실질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미국의 엔비디아와 퀄컴, 인텔 등 대표 반도체·AI테크 기업들이 베트남 내 반도체 패키징 및 AI R&D 센터 투자에 전폭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도 베트남을 동남아 외교 및 안보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무역 제재 등으로 중국 제조업이 대거 베트남 북부로 거점을 옮기는 등 베트남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주요국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중국과 베트남은 최초로 지난 3월 장관급 '3+3 전략대화(외교·국방·공안 장관 합동 회의)'를 열고 안보 협력에 나섰다. 중국 환구시보는 이를 두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다자 안보 벨트에 대응해 중국이 베트남과의 안보적 신뢰를 최고 수위로 끌어올린 계기"라고 자평하면서 베트남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도 안보·공급망상 베트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부터 2박 3일간 베트남을 방문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국립하노이대에서 연설을 통해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자 동남아 성장의 중심인 베트남과의 협력 강화는 FOIP를 실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FOIP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약자로, 중국의 패권주의적 해양 진출과 경제·외교 정책인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이 중심이 되어 수립한 지형학적·외교안보 전략 구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어 "우리는 법치에 기반한 해양 질서를 지키고 역내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안보 협력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면서 "일본은 '정부안보능력강화지원(OSA)' 틀을 통해 베트남을 포함한 마음을 같이하는 국가의 해양 안보 및 법집행 역량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위 장비 무상 제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안보·방산 분야의 협력도 약속했다.
백악관 실세부터 차관급 대사까지...중량감 커졌다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면서 각국이 보내는 대사의 면면도 달라졌다.
미국은 '백악관 실세'를 내세우며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베트남과의 전략적·경제적 연대를 말뿐이 아닌 미국 국익에 맞게 확실하게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달 부임한 제니퍼 윅스 대사는 백악관 인사실장 출신으로 오바마, 트럼프(1기), 바이든, 트럼프(2기) 등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4개 행정부에 걸쳐 행정부 인사행정을 총괄했다.
제니퍼 윅스 대사는 미국·베트남 수교 이후 첫 여성 주베트남 미국 대사이자 한국계 미국인으로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도 눈길을 끈다.
제니퍼 윅스 대사의 우선순위는 통상이다. 미·베트남 무역 불균형을 줄이고 미국산 상품·서비스의 시장 접근을 확대하는 동시에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에서 베트남을 핵심 공급망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것이 과제다. 에너지·농산물 시장 개방과 해양 안보, 방산 협력도 주요 현안이다.
이 외에도 해양 안보와 방산 협력, 베트남전쟁의 유산인 고엽제 정화 등도 양국 관계의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통상 압박과 전략적 협력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중국은 아예 대사의 '급'부터 높였다. 현재 중국 외교부 내 주베트남 대사직은 북한·일본 등 주요 주변국 대사와 함께 최고위급 보직으로 분류된다. 이전 사장급(국장급)에서 격상해 2024년부터는 부부장급(차관급) 인사를 베트남에 파견해 사장급인 주한 중국대사보다 외교부 내 의전서열이 높을 정도다.
현 허웨이(何煒) 대사는 '안보·국경통'이다. 2024년 9월 부임한 그는 중국 외교부 변계해양사를 거쳐 국경과 남중국해 문제를 다뤄왔다. 베트남 내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동시에 양국 간 국경·안보 문제부터 무역·공급망까지 복잡한 현안을 관리해야 한다.
허 대사는 베트남산 농산물의 중국 시장 진출 확대에도 힘을 쏟아왔다. 통관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베트남산 두리안의 중국 수출 확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베트남 북부와 중국을 잇는 국경 철도 연결 등 인프라 협력에도 힘을 싣고 있다.
일본은 'ODA·인프라통'을 전진 배치했다. 이토 나오키(伊藤直樹) 주베트남 일본 대사는 외무성 내 핵심 보직과 ODA 업무를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직전 주방글라데시 대사 시절 다카 메트로와 마타바리 심해항 등 대형 ODA 사업을 담당했다.
베트남이 남북고속철도와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이토 대사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일본 기업의 대형 인프라 사업 참여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해야 한다. 아오자이를 입고 베트남 문화를 소개하는 영상 등을 공유하며 현지와의 접점을 넓히는 '스킨십 외교'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는 베트남에서 서기관·총영사·공사를 모두 거친 대표적인 '베트남통'인 겐나디 베즈데트코 대사를 2021년 특명전권대사로 임명,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을 이어가는 동시에 석유·가스 등 에너지 분야에서도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정통 경제·통상 외교관을 앞세웠다. 14일 공식 부임한 이미연 신임 대사는 자유무역협정정책기획과장, 주중국 공사참사관, 주제네바 차석대사, 양자경제외교국장 등을 거친 경제외교통이다. 2018년에는 주베트남 대사관 공사로 근무해 현지 경험도 갖췄다.
3대 교역국이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1만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한 베트남에서 경제·통상 현안을 직접 챙길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공급망 재편과 통상 환경 변화 속에서 현지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해졌다.
이 대사는 고(故) 이창호 전 주이스라엘 대사의 뒤를 이은 부녀 외교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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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protected] 김준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