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향해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다카이치의 '원격 참배'
직접 참배 피하고 수백m 밖서 '요배'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료도 봉납
당 핵심 간부 3명은 이례적 단체 참배
추도사서 '반성·부전의 맹세·교훈' 삭제
"참화 반복시키지 않겠다" 책임 주체 논란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패전 81주년인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는 대신 수백m 떨어진 일본무도관에서 신사 방향을 향해 요배(遥拝·멀리서 하는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직접 방문은 피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예는 갖추는 절충적 행보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물료 봉납과 자민당 지도부의 집단 참배, 추도사에서의 '반성' 삭제까지 더해지면서 다카이치 정권의 첫 패전일은 한층 짙어진 보수색을 드러냈다.
15일 산케이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10분께 정부 주최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열린 도쿄 지요다구 일본무도관에 도착해 관용차 안에서 대기했다. 약 10분 뒤 차에서 내려 북서쪽 수백m 거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 방향을 바라보며 신사 참배 예법인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친 뒤 다시 한 번 절하는' 의식을 했다.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을 통해 자민당 총재 명의로 사비를 들여 다마구시료(공물 대금)를 봉납했다. 외교적 충돌을 부를 직접 참배는 삼가면서도 주요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는 자신의 신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행보로 해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각료 시절 종전일과 춘·추계 예대제 때마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는 총리 취임 후에도 참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총리 취임 이후 지난해 추계 예대제와 올해 4월 춘계 예대제에 이어 이날도 직접 참배를 보류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한일 관계의 균열을 원치 않는 미국의 우려까지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직 일본 총리의 종전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마지막이다.
대신 자민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섰다. 스즈키 간사장과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 등 당 핵심 간부 3명이 야스쿠니신사를 함께 참배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당을 대표하는 형태로 종전일에 단체 참배한 것은 이례적이다.
스즈키 간사장은 참배 후 "다카이치 총재가 영령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며 "그 뜻을 받들어 당 집행부를 대표하는 형태로 참배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의 단체 참배가 다카이치 총리의 향후 직접 참배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을 비롯한 현직 각료 4명과 초당파 의원 모임 소속 의원 80여 명도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영령들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하고 부전의 맹세를 새롭게 했다"고 밝혔다. 현직 방위상의 종전일 참배는 2024년 기하라 미노루 당시 방위상 이후 2년 만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추도사에서도 보수적 역사관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시키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반성'과 '부전의 맹세', '역사의 교훈'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지난해 패전 80주년을 맞아 13년 만에 되살린 '반성'을 다시 제외하면서 '정치적 스승'으로 꼽아온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추도사 기조로 돌아갔다.
특히 역대 총리들이 써온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반복시키지 않겠다"로 바꾼 점에도 관심이 쏠렸다.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인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 교수는 "일본이 과거 전쟁을 주체적으로 벌인 것이 아니라 전쟁에 휘말린 피해자라는 역사 인식이 드러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보수 성향 산케이신문은 "억지력을 높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초선 의원이던 1995년 국회에서 "나는 전쟁 당사자라고 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는 등 과거사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 패전일 행보도 방위력과 경제안보를 강화해 '강한 일본'을 재건하겠다는 다카이치 정권의 보수적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나루히토 일왕은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일왕이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을 언급한 것은 12년 연속이다.
이날 추도식에는 일왕 부부와 다카이치 총리, 전몰자 유족 등 4180명이 참석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숨진 군인·군속 약 230만명과 민간인 약 80만명 등 310만명을 추모했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