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행당해 산재까지 인정됐는데…노동청 "괴롭힘 아니다"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 후 부당전보 판정
회사 임원과 충돌 과정서 폭행...검찰 구약식 처분
근로복지공단도 해당 부상 업무상 재해 승인
노동청은 "일방적 직장 내 괴롭힘 보기 어려워"
전문가 "판단 사례 축적·공개해 객관성 높여야"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한 근로자가 회사 임원에게 폭행을 당해 산업재해 판정을 받고, 가해 임원은 폭행 혐의로 검찰에 구약식 처분을 받았지만 고용노동청은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서도 개별 근로감독관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은 지난 6월 외국계 소프트웨어 기업 E사의 미등기임원 A씨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사건을 '위반 없음'으로 행정종결했다. 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발생 시 조치 의무 위반을 모두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A씨는 2020년 12월 E사에 마케팅 이사로 입사했다. A씨 측에 따르면 그는 회사가 보유한 고객 개인정보를 영업에 활용해 홍보 이메일을 발송하라는 지시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뒤 2021년 2월 해고됐다. 이후 부당해고 구제 절차와 행정소송을 거쳐 대법원은 2024년 12월 A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확정했다. 그러나 복직 이후 회사는 A씨를 기존 서울사무소가 아닌 인천 송도사무소로 전보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3월 해당 전보를 부당하다고 판정해 원직 복직을 명령했다.
폭행 사건은 노동위 판정 나흘 뒤에 발생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A씨가 업무 관련 논의를 위해 서울사무소를 찾아 등기이사 B씨와 대화하던 중 B씨가 A씨를 회의실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했다. 현장 녹취록에는 이후 A씨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B씨가 "그럼 제가 붙잡아 또 때릴 건데"라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B씨가 A씨의 왼쪽 손목을 수차례 잡아당기는 등 폭행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후 B씨를 폭행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5월 해당 사건을 업무상 재해로 승인했다. 산재 승인 자료에는 왼쪽 손목 염좌 및 긴장과 어깨 부위 손상 등이 상병으로 기재됐다.
A씨는 폭행 외에도 자신에 대한 업무배제와 비방, 부당한 지시 등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진정서에는 B씨가 다른 직원에게 A씨를 '소송해서 들어온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칭하고, 업무시스템 접근이나 회의·교육자료 공유 대상에서 A씨를 제외한 데다 전보 발령의 부당성을 제기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의 판단은 달랐다. 노동청은 당사자 진술과 참고인 진술, 현장 녹취록 등을 종합한 결과 B씨의 행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인 폭행의 행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속·반복적인 폭언이나 모욕적 발언도 확인되지 않아 업무상 적정범위를 현저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업무배제 역시 의도적으로 주요 프로젝트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폭행이라면 통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사건은 전체 녹취록을 들었을 때 일방적인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선임한 외부 노무법인의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사용자(회사)가 행위자(B씨) 개입 없이 외부 조사자를 선임해 객관적으로 조사했으며 결론에 명백히 불합리한 점이 없었다"고 밝혔다. 부당 전보 등에 대해서는 B씨에게 인사처분 권한이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노동청의 입장이다.
사측도 A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E사 담당자는 "B씨가 장기간 근무한 등기임원인 만큼 자체 조사의 신뢰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기존 자문사까지 배제하고 거래가 없던 외부 노무법인에 조사를 맡겼다"며 "양측의 진술과 관련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조사하도록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B씨는 "A씨가 난동을 부려 업무를 방해하는 상황을 제지하면서 장소를 옮겨 얘기하자고 손목을 잡았을 뿐"이라며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무실에서 폭행을 가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A씨가 폭행 신고와 산재 신청 등을 의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며 "외부 노무법인과 노동청 조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개별 근로감독관의 판단에 크게 의존하는 현행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영섭 노무법인 로앤 노무사는 "법원은 판례가, 노동위원회는 판정례가 공개돼 사건이 쌓이면서 판단 기준이 형성되지만 노동청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개별 판단이 제대로 공표되지 않는다"며 "같은 사건도 감독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데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없어 자정 작용이 이뤄지기 어렵다. 노동청의 판단 사례를 축적·공개해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