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美, 세계질서 유지 능력 의문 제기...동맹방어 의지와 무기 고갈 우려
[파이낸셜뉴스] 이란 전쟁 장기화와 함께 미군의 전력 운용 부담이 커지면서 미국이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세계질서를 지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동맹 방어 의지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에 더해 하드파워의 한계까지 드러나고 있다며 능력과 신뢰를 둘러싼 의심이 동시 확산되는 흐름을 짚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동맹을 계속 떠받칠지에 대한 고민이 국제사회에서 누적돼 왔다고 전했다. 러시아와의 밀착 신호, 방위비 증강 압박, 고율 관세 등 동맹을 둘러싼 압박 카드가 잇따르는 가운데, 동맹국들은 미국의 의도를 둘러싼 신뢰 문제를 넘어 실제 전장 투입 능력까지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무기 비축과 배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동맹 방어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기고 고갈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전력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애틀랜틱카운슬의 매슈 크로니그 선임연구원은 억지력은 신뢰성과 능력이라는 두 축을 모두 필요로 한다며, 과거에는 신뢰 가능성을 의심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의심의 대상이 됐다고 진단했다.
동맹 안에서 감정만이 아니라 운영 차원의 불안이 커진 정황도 제시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싱크탱크와 전문가들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북한에 대한 대화 제안 같은 조치를 최근 의구심을 키우는 사례로 꼽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과 탄도미사일을 공급하며 유럽에 압박을 가하는 국면에서, 미국이 북한을 위협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규정한 듯한 신호를 보내며 훈련 규모를 일방적으로 줄였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기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전장 전반의 대응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 전쟁 장기화로 아시아에 배치돼 있던 미군 전략자산이 중동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탄도미사일 생산량이 미국의 요격미사일 생산 분을 앞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아시아에서의 전력 운용뿐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 러시아가 추가 공격을 가할 경우에도 미국이 방어에 나설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 쪽에서는 핵우산과 방어 역량에 대한 체감 의심이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독일 연방군 대령 출신인 로데리히 키제베터 기독민주당 의원은 미국이 발트국이나 독일을 위해 자국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며, 핵우산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무기 고갈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고 있지만, 핵심 재고가 위험 수준에 가까워지고 재보충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는 반복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핵심 방공무기인 패트리엇 요격미사일과 사드 재고가 이미 절반 수준으로 소진됐으며, 토마호크와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JASSM도 상당 부분 사용됐다고 추정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상황이 동맹이나 우방이 전략 경쟁국으로부터 방어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변수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미국외교협회 전문가 보고서는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고갈되면 중국의 대만 공격을 억제할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미사일 대량생산 체계를 전쟁 수준에 가깝게 전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분쟁이 시작된 뒤 생산을 늘리려 하면 너무 늦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방어 체계의 병목이 구체적인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진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존 뷰 전쟁학부 교수는 요격미사일과 미사일 방어체계의 부족이 여러 전장에서 심각한 위기로 번질 위험을 만든다고 평가했다. 이는 걸프 지역에서의 단기 충격뿐 아니라 유럽 방어의 구조적 결함으로도 인식되고, 아시아에서도 잠재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급격한 전면전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본 시각도 함께 전해졌다. 싱가포르 정치분석가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군수품은 다시 보충될 수 있으며, 당분간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분쟁이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무모한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동시에 해결해야 할 국내 과제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이란 전쟁이 오히려 경각심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허드슨연구소 루도빅 후드 선임연구원은 서방이 방심하기 쉬웠던 취약 지점이 드러난 만큼, 이는 미래의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치르는 일 자체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만, 전략적 준비의 필요성을 새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국제정치 전문가는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세계질서를 지킬 의지가 있는가를 넘어, 실제로 그 의지를 뒷받침할 무기와 전력이 남아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며 "동맹국들은 이제 군사 협력의 정치적 신호뿐 아니라 보급과 생산, 재고 관리까지 포함한 능력의 현실을 함께 점검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강구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