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 가능성 커진다/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04.05.20 11:13
수정 : 2014.11.07 18:22기사원문
오늘날의 경제사회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움직인다. 만일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고층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내리고 덥거나 추운 날에도 서너 시간씩 걸어서 회사까지 출근하고 공장에서는 황소가 바퀴를 돌려서 거대한 프레스를 작동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에너지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지만 잊고 살기 일쑤다. 제때에 싼값으로 쓸 수만 있다면 구태여 신경쓸 필요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매일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쓰고 있고,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의존도가 97%에 이르다 보니까 유사시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우리나라 에너지 사정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와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우선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모든 자원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중국에서 유연탄을 다량 수입하여 발전소에 공급해오던 우리나라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수입도 중단되고 있고 가격도 거의 두배 가까이 껑충 뛰어올랐다.
지금까지 유연탄은 가격이 싸고 공급도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전력을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연료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유연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지역은 에너지를 주로 수입하는 경제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이 그러하다. 이들은 수요자로서 경합하고 있고 점점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아직까지 대부분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온다. 해로를 따라 수송된다. 공급량이 무한정 늘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동북아 지역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도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 원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우리가 주로 의존하고 있는 두바이산 석유가 배럴당 33달러를 웃돌고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석유위기가 왔을 때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이 또 다시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에너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현재의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에너지 수급의 문제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맡기는 것과 같다. 비 오기를 기다리는 천수답처럼 말이다.
국내적으로도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원자력 발전은 전력을 생산하는 또 다른 대안으로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는 이미 필요한 전력의 절반 정도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국가가 되어 있다.
부존 에너지가 없는 나라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이 싫다고 하더라도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기반부터 무너지고 있다. 전북 부안지역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설치하려는 시도는 엄청난 갈등 속에서 진전이 없다. 사회적 합의의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중요한 에너지원이 또 하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공급시설은 대부분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있다. 이를 원자력 사업을 하는 회사와 반핵단체나 해당지역 주민 사이의 갈등이라고만 치부해 버리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가 리더십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인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선진국들은 대체로 에너지를 국가적 아젠다로 취급한다.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는 평상시의 문제를 다루기 위함이 아니라 에너지 부족이 발생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는 장기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선택의 문제이다. 에너지 설비를 건설하고 에너지를 도입하기 위한 계약을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준비해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그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력의 7할 이상을 생산하는 수단들이 일제히 흔들리고 있다.
당장은 아무런 대안이 없는데도 말이다. 에너지 문제를 국가적 아젠다로 상정하고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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