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임춘자(전FC상무)
파이낸셜뉴스
2008.12.30 17:11
수정 : 2008.12.30 17:11기사원문
“트렌드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처해라. 가정과 업무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보험설계사(FC)만이 생명력이 길다. ”
90년대 초 보험업계 최초로 여성 임원자리까지 올랐던 삼성생명 전 FC 임춘자씨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충고다. 임씨는 삼성생명에서 FC로 시작해 상무까지 올랐던 인물로 경기도 용인 휴먼센터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다.
대전여고의 수재였던 임씨는 당시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고객이었다. 보험금을 수금하러 온 FC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FC의 당시 명칭은 외무사원이었다. 한달 평균 보험료가 40원 안팎하던 시절이었다.
임씨가 FC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차별화와 VIP 마케팅. 당시 외무사원들은 조회가 끝나자마자 삼삼 오오 모여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임씨는 그러나 이런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선배들과 반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잠재 고객층을 대전시의 VIP들로 잡았다.
대전시 라이온스클럽, 로타리 회원들의 명단을 입수했다. 요즘에는 너도 나도 VIP 마케팅에 열중하지만 당시로서는 여느 보험설계사들도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였다. 임씨는 이들의 자동차 번호까지 다 외웠다.
임씨는 이런 노력으로 우수 FC로 선발돼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의 간담회에도 초대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매년 빼먹지 않고 우수 FC들을 직접 격려하곤 했다.
“회장이 초밥을 드시면서 ‘와 안 먹노…. 여러분이 먹어야 나도 먹는다’고 했던 말이 기억 납니다. 참 인자한 분이었죠.”
고 이 회장은 여러분이 있어서 회사가 발전한다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생명이 그룹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임씨는 71년 연도상을 수상했다. 회사에서는 그의 영업력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자질을 높이 사 73년에는 지도장(오늘의 EM)으로 발탁했다. 임씨가 관리자의 길로 접어든 계기였다. 그는 지도장이 된 뒤 FC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했다.
“FC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애들은 잘 키우고 있는가. 남편과의 사이는 좋은가” 등 임씨는 그들의 사소한 부분까지 챙겼다.
회사 일을 잘하려면 가정이 평안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본인이 거느리고 있는 FC들의 가정환경을 면밀히 조사(?)했던 것.
임씨의 이런 스킨십은 효과를 발휘했고 회사는 76년 그를 남대전 영업소 소장으로 발령냈다. 당시 전국에서 최연소 소장이었다. 소장직에 오른 그가 역점을 둔 것은 설계사의 자질 향상.
“보험이 불신을 받는 것은 FC들의 자질 때문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법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임소장은 우선 리쿠르팅 자원을 선별했다.
대전에 본사가 있었던 조폐공사의 퇴직자 명단을 확보해 리쿠르팅 작업에 들어갔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반드시 선거가 끝나면 운동원 가운데서 리쿠르팅 후보를 선별했다. 그래서 이들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전국의 FC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남대전 영업소가 1등을 독차지했다.
임소장은 영업소 운영의 초점을 FC와 고객에 철저하게 맞췄다. 남대전영업소는 실적은 물론 유지율 등 품질 면에서도 수위권을 달렸다.
회식문화도 바꿨다. 술자리를 일절 갖지 않았다. 대신 주말 등산으로 대체했다. 남자 사원들은 고과를 잘 줘 본사로 보냈다. 여자들은 공사를 구분하는데 신경을 기울였다. 이런 소문이 알려지자 남자사원들이 남대전 영업소로 발령내 달라고 줄을 섰다고 한다.
임 소장은 차장, 부장을 거쳐 93년 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에 올랐다. 임원에 발탁된 뒤 경기도 용인 창조관에서 이건희 회장의 특강을 들었다.
그룹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130명이 대상이었다. 양을 버리고 질로 가야 한다는 이 회장의 강의를 듣고 그는 자신의 영업방침에도 회장의 강조사항을 확대, 접목했다. 사실 그는 보험영업의 질 경영을 몸소 실천해온 터였다. 최초의 여성임원이다 보니 그룹 계열사에서도 강의 요청이 잇따랐다.
97년 IMF 체제로 보험업계도 구조조정의 태풍을 피해나갈 수 없었다. 98년는 그는 퇴직을 결심했다. 그해 9월에 이수빈회장에게 면담요청을 했다. 퇴직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은 말렸다.
“부하들을 내보내고 저만 살 수 없습니다.” 임춘자씨는 이렇게 삼성생명을 홀연히 떠났다. 남편과 해외여행 같다 왔더니 삼성생명에서 사무실을 마련해줬다.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임씨는 회사 측의 배려로 3년 동안 특강을 다녔다.
임씨는 요즘 보험영업이 굉장히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트렌드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메시지다. 그러면서 재미 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해 줬다.
70년대 초 오일쇼크로 하루 사이에 물간 값이 두 배로 올랐던 적이 있었단다. 30대 초반의 강모 고객이 보험계약을 해지해 물건을 사겠다고 말했다.
사재기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임씨는 이 고객을 만나 은행, 예금 다 빼서 물건 사면 국가경제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설득했다. 그 고객은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가정과 자기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면서 가정과 영업의 조화를 강조하는 임씨는 요즘도 적십자 특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돌려 주고 있다.
/toadk@fnnews.com 김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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