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울리는 재개발 주거이전비
2010.02.11 06:20
수정 : 2010.02.10 22:46기사원문
“지난 달에 집주인이 아들내외가 들어온다면서 집을 빼 달라고 하더라고요. 재개발 구역이라 주거이전비라도 받을 생각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더욱이 이 동네에 집주인들이 재개발을 앞두고 이전비 안 주겠다고 세입자를 안받는 통에 전셋집이 아예 씨가 말랐어요”(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B모씨)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과 은평구 증산·수색뉴타운 등 사업시행인가를 앞둔 서울과 수도권의 재개발구역에서 봄 이사철을 앞두고 집주인들의 ‘세입자 몰아내기’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재개발구역의 세입자 주거이전비를 집주인이 부담하도록 해 이에 불안을 느낀 집주인들이 주거이전비 지급 기준시점인 사업시행인가 전에 세입자를 내보내는 데 따른 것이다.
■집주인 “이전비 수천만원 부담”
10일 인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염리3구역과 아현4구역 등 조합설립인가가 난 재개발단지와 재개발촉진구역으로 지정된 양천구 신정 2-1구역, 2-2구역 등에서 집주인들이 세입자와 계약연장을 회피하고 기존 세입자들을 내보내면서 이 일대의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다.
성동구 행당6구역은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조합원은 “임대사업을 하는 다가구주택 소유자는 많게는 수억원의 주거이전비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총회에서 정관을 바꾸는 것 자체를 반대하겠지만 미리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을 비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거이전비는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구원수별 월평균 가계지출비를 기준으로 조합 정관에 따라 집주인이나 조합이 세입자에게 4개월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도록 돼 있다. 4인가족 기준으로 1402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신정4구역의 집주인 김 모씨(39)는 “오는 5월에 전세계약 만기가 돌아오면 연장없이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려고 한다”면서 “세입자 측에서 전세를 빼주지 않을 경우 명도소송을 하기 위해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 “주거이전비 지급, 누굴 위한 정책”
이처럼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촌극이 연출되면서 투기를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이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 정책적 엇박자를 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마포구의 한 주민은 “이는 정부가 세입자 문제를 집주인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결국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선량한 세입자들을 내모는 나쁜 사람이 되고 세입자는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정동 한 세입자는 “주거이전비를 생각하고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니 누굴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거이전비 저리 대출 등 대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재개발 구역의 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합이 앞서서 저리의 주거이전비 대출을 알선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주거이전비를 집주인 부담으로 하면 조합의 사업비가 줄어 조합원 전체의 부담이 줄어든다”면서 “개별자산은 자신이 관리하는 것을 전제로 세입자 지원 정책을 펴야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스하우스 전영진 대표는 “도정법 개정 이후 서울 재개발 지역에 전세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늘 이야기 해 왔다”면서 “주거이전비를 부담스럽게 생각한 집주인이 수익성을 높이려고 사업승인을 앞두고 전세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 대표는 집주인 가운데는 재계약을 조건으로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 포기각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효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현재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거이전비를 포기한다는 ‘특약’을 쓰는 것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면서 “이로 인해 오히려 전세계약 연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mjkim@fnnews.com 김명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