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으로 꽃피는 ‘여성들의 야설’
뉴스1
2014.06.27 06:01
수정 : 2014.06.27 06:01기사원문
“읽을 책이 없다”
△ 주간 베스트셀러 10위 내 7권은 19금 로맨스 소설
전자책 시장을 들여다보면 답이 있다. 전자책 판매 점유율을 보면 로맨스, 무협, 판타지 등 장르소설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로맨스 소설에 대한 쏠림 현상이 높다.
26일 기준 지난 일주일간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자책 1위는 성인 소설 ‘순종적 관계’다. ‘크리스마스 징크스’(2위), ‘모란’(4위), ‘위험한 관계’(6위), ‘사랑에 미쳐’(8위) 등 10위권 안에 19금 소설 7권이 들어있다.
사정은 예스24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 외전’(3위), ‘그 남자의 커피 취향’(4위), ‘위험한 관계’(5위) 등 주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7권이 19금 소설이다
이는 종이책 베스트셀러 트렌드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2014상반기 베스트셀러 종합 100위 안에 19금 콘텐츠는 하나도 없다.
△ 몰래 읽기 좋은 야설, 전자책 시장 파고들어
성인 소설이 강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여성 독자들이 있다. 교보문고의 2014년 상반기 전자책 판매 동향 분석에 따르면 여성 독자 중 20~30대 여성 구매 비율이 71.4%로 나타났다.
성인 소설의 내용을 보면 여성 독자가 주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스24 주간 베스트 5위인 ‘위험한 관계’ 책소개에는 ‘재벌가의 장녀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만 지독하리만치 남자 운이 없는 여자 김수희’, ‘무조건 잘생긴 남자는 거부하고 보던 그녀의 위험한 원나잇 스탠드’, ‘다시 만날 일 없다 생각한 남자라고 생각한 남자가 세계 최고의 재력가이자 G그룹 회장 칼 그랜트라니’등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성인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직장인 A(27·여)씨는 사람들이 성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성인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자보다 여자가 성인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편이라 종이책으로 들고 다니기는 부담스럽다”며 “전자책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이동하면서 시간 때우기로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천천히 곱씹으면서 생각도 해보고 음미해야 할 인문학 서적들은 직접 종이를 넘기며 밑줄도 그어보기 때문에 주로 종이책으로 구입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김은영 대중문화 평론가는 “책 표지를 보일 필요 없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전자책 특징과 구입하기에는 돈 아깝고 어디서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의 특징이 결합해 성인 소설 전자책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성인 소설은 과거 도서 대여점에서 여성들에게 인기 품목이었다”며 “성인 소설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욕망을 소비하는 방법이 더 편리한 곳으로 옮겨간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 전자책 질 떨어뜨린다는 우려
성인 로맨스 소설이 전자책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일각에서는 전자책 시장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 팔리는 성인 로맨스 소설 출간은 갈수록 증가하는 데 반해 양서는 종이책만큼 많지 않다. 2014년 상반기 인문 분야 전자책 판매 점유율도 6.3%에 그쳤다.
이에 교보문고 관계자는 “전자책 시장 절반 가까이가 장르소설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며 “질이 낮다고만 보지 말고 장르 소설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해 소설의 질을 높이면 공포 스릴러 대가 스티븐 킹 같은 대형 작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3부작 성애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저자 EL제임스는 지난해 3300만 파운드(572억 원) 수익을 얻기도 했다. 그만큼 장르 소설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장르 소설을 하위문화라고 치부하는 인식이 강하다”며 “장르 소설의 문학적 가치가 높다고 보지는 않지만 무시하면서 내버려 두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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