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고려불상 재판과 역사의 진실
파이낸셜뉴스
2015.01.15 16:57
수정 : 2015.01.15 16:57기사원문
재판에는 법의 해석보다 사실을 규명하는 다툼이 압도적으로 많다.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위임받아 진실 찾기 게임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의뢰인은 변호사한테 자신의 프레임에서 본, 유리한 정보만 제공한다. 그러다 보면 변호사는 그쪽 논리에 쉽게 매몰된다. 그런 점에서 심판관은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판사는 양쪽 주장을 잘 들어야 하고 원고 쪽에 또 피고 쪽에 번갈아 서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 필요하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진실의 전모를 단편적 정황 증거의 조각만으로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라 사이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도 이와 비슷하다. 그리스인 헤로도토스는 그리스·페르시아 사이의 전쟁을 다룬 '역사(Historiai)'를 기술함에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다 보니 자국민들은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전문(傳聞) 진술의 인용 그리고 사실과 의견 구분을 명확히 했고 단정을 가급적 피하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고려 불상 1점의 개별적 행방을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 우리가 일본더러 약탈의 의심이 든다고 그 불상의 출처를 해명하라고 하는 요구가 정당할까.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로 우리 절은 피폐해지고 대신 일본에서는 불교가 숭상받던 시기였기에, 대마도 정벌이라는 무력응징과 함께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힘으로 왜구를 순화시키기 위해 불상이나 경전을 안겨주는 회유책 내지 교화책을 취했을 수 있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양국 교류의 큰 매개체였고 절은 그 중에서도 문화교류의 상징이었다. 일본의 불교수용 과정에서 불상이 함께 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백제는 6세기 실제로 엄청난 정신적 선물을 일본에 안겨주지 않았던가. 왜구도 고급 문화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쌀 외에 청자나 경전, 불상을 원했을 수도 있다. 조선으로서는 문화 선진국의 자부심으로 무역선이나 사송선에 불상을 실려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설령 약탈해간 것이라 한들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아야 할 문화재가 산적해 있는데 훔친 이 불상 2점을 안 돌려주면서 일본과 협상을 하자는 것이 과연 외교정책적 측면에서 적절할까.
개개 고려 불상이 약탈의 상징인지 고급문화 수출의 표상인지 가려내기는 지난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적의 관점에 서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중요하다. ' 남의 신발을 신어봐야 남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그 실천은 기실 매우 힘들다. 대마도의 조선통신사 역관 아메노모리 호슈의 현창비(顯彰碑)에 새겨진 '성신(誠信)외교'를 양국 국민이 다 같이 진지하게 되새겨봐야 할 때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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