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입법이 걱정된다

파이낸셜뉴스       2016.06.16 17:28   수정 : 2016.06.16 17:28기사원문



과거에는 정부입법이 대부분이었으나 민주화 이후 의원입법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14대에는 의원입법 건수가 정부입법의 60%밖에 되지 않았으나 15대에는 1.4배, 16대 3.2배, 17대 5.8배, 18대 7.2배, 19대에는 15배로 의원입법이 대부분이다.

국회의원이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원인은 국회의원들의 적극적인 의정활동 외에 시민단체 등이 국회의원 평가 시 입법 건수를 중요 요소로 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아울러 정부입법이 장기간 소요되고 타 부처의 반대 등으로 입법이 어려운 것을 피하고자 정부 각 부처가 국회의원에게 부탁하는 이른바 청부 입법도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의원입법이 많아지면서 법령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정부입법은 의원입법에 비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 우선 일정기간 입법예고하는 기간을 두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각 부처와 협의 절차를 진행한다. 정부입법은 국무회의 과정에서 모든 부처의 의견을 수렴한다. 아울러 규제개혁심의회의 심의를 거침으로써 규제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검증하게 된다. 불합리한 규제들이 규제개혁 심의 과정에서 걸러진다. 또한 법 체계나 다른 법률과의 상충 등을 거르기 위해 법제처 심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예산이나 세금과 관련된 법은 기획재정부의 검토를 거친다. 재정사항의 경우 기재부가 강력히 반대하면 사실상 통과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의원입법은 절차가 너무 허술하다. 우선 정부입법에 있는 규제개혁심의회 절차가 없다. 반시장적 입법인지 규제효과에 비해 규제비용이 더 큰지 등을 검토하는 절차가 전혀 없다. 예컨대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면세점 허가기간을 5년으로 제한한 것도 졸속 의원입법의 예이다. 만일 규제개혁 심의 절차가 있었다면 걸러졌을 것이다. 환경규제 같은 경우 정부입법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는 국무회의 통과가 어렵지만 의원입법은 타 상임위의 의견이 별로 반영되지 않으므로 환경위 안대로 통과된다. 예산이 수반되는 법령의 경우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다. 정부의 기재부 예산실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가 국회에는 없다. 예결위가 있으나 상임위원회가 아니고 정부의 예산실과 같은 기능을 하기에는 전문성 면에서 너무 미흡하다. 법률체계 심사 등 정부의 법제처 심의기능도 국회는 미흡하다. 법사위가 정부 법제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전문성이나 인력 면에서 미흡하다. 오히려 법률체계 등 심사보다 자기들 권한도 아닌 법률의 실질적 내용을 심의해 월권 시비가 일어나고 있다.

의원입법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입법시스템 보강이 필요하다.

첫째, 규제개혁 심의 절차가 필요하다. 외부 전문가로 국회 내 규제개혁심의회를 구성해 모든 법령에 대한 심의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상임위 간 상호 의견조정을 강화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 예컨대 환경규제 강화 법안의 경우 산업통상자원위 등 다른 상임위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고 연석회의 등을 활성화해 특정 상임위의 일방적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법 체계 검토 등 정부의 법제처와 같은 기능은 법제실을 보강해 실시하고 법사위는 법무부 등 소관 부처를 담당하는 보통 상임위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시민단체에서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입법 건수로만 할 것이 아니라 법률의 내용·품질 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나아가 국회의원별 의정활동 기록을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국회의원의 책임성 있는 입법 활동을 위해 입법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예와 같이, 법률을 부를 때 '김영란 법'과 같이 대표 발의자 이름을 부르는 관례를 만들면 입법 활동이 훨씬 신중해지리라 믿는다.

20대 국회에서는 입법의 품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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