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된 자유인, 희망과 절망으로 점철된 세월 '노예 12년'
파이낸셜뉴스
2017.10.28 08:37
수정 : 2017.10.28 08:37기사원문
모 영화에서 세계정복을 꿈꾸던 악당은 “사람들은 자유를 제한당할 때 저항한다”고 평했다. 다수가 저항한다면 투쟁이 되겠지만, 체제가 한 사람을 옥죌 땐 허무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12년 간 자유를 박탈당했던 흑인 ‘솔로몬 노섭’이 그렇다.
‘노예 12년’은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가치 ‘자유’를 처절히 역설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개봉된 뒤 평단의 찬사가 쏟아졌고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 외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가 만난 두 주인 윌리엄 포드와 에드윈 엡스는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윌리엄이 솔로몬을 나름대로 존중하는 반면 에드윈은 그를 폭압, 인간 이하의 소유물로만 여긴다. 하지만 둘 모두 노예제라는 체제에 순응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채무에 시달리던 윌리엄은 자신이 자유인임을 항변하는 솔로몬을 에드윈에게 팔아넘긴다. 노예들을 거리낌 없이 채찍질하고 성추행하던 에드윈이야 더 말할 게 없다.
솔로몬으로선 고난의 정도가 달라졌을 뿐 자유를 빼앗긴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예무역이 금지되던 추세에서 흑인이 납치돼 팔리는 건 예사다. 노예들은 폭력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등 인권을 박탈당한다. 감독 스티브 맥퀸은 이 같은 묘사로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다만 노예제에 한해 선한 흑인, 악한 백인의 대결구도를 그리진 않는다. 노예선(船)에서 반란을 꾀하던 흑인이 과거 주인을 따라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 솔로몬은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청하지만 그는 못들은 척 외면할 뿐이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극중 장치는 많지 않다. 전개도 느리다. 그럼에도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비참함 때문이다. 솔로몬은 윌리엄에게 제 재능을 모두 바치면서까지 자유를 되찾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자유의지를 보이던 그가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과정에 관객들은 저절로 몰입하게 된다.
거장 한스 짐머의 음악이 감정을 고조시키면서도, 사망한 동료를 추모하며 부르는 ‘무반주’ 장송곡은 허무함과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솔로몬이 원하는 건 집과 가족 이상의 가치다.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말이 그 생각을 잘 나타낸다. 솔로몬이 원하는 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유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미국 정치가 패트릭 헨리와 다르게 그는 "자유와 삶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극 종반부에 이르러 노예제 폐지론자인 베스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2년. 그는 뉴욕에 제 소식을 전해달란 솔로몬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 덕에 절친했던 백인동료가 시민증명서를 들고 찾아오고 솔로몬의 삶은 또 다시 전환된다.
“플랫을 돈 주고 샀다”는 에드윈에게 그는 “솔로몬이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갖고 있다”고 반박한다. 긴 세월 불법적인 처우를 받던 솔로몬이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게 되지만 통쾌함보다 씁쓸함이 밀려오는 이유는 뭘까.
솔로몬의 인생을 뒤바꾼 사람들도 아이러니다. 노예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 백인, 자유를 찾게 된 계기도 백인이니까 말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자신처럼 나이를 먹었다. 자녀들은 장성해 아이까지 낳았다. 솔로몬이 “용서해달라”고 말하지만 “용서할 게 없다”는 그들의 말에서 또 다시 슬픔이 느껴진다. 12년 간 남편과 아버지를 잃었던 가족들 역시 또 다른 피해자였던 것이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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