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에 빠진 삼성
파이낸셜뉴스
2018.05.14 17:17
수정 : 2018.05.14 17:17기사원문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토끼 사냥이 이뤄졌다. 당시 토끼 사냥은 눈 내린 날에 어김없이 하는 집단 행사였다. 토끼사냥은 주로 '몰이' 방식이었다.
하나의 무리가 산 위로 올라가고, 다른 무리는 산 아래로 가서 협공을 하는 식이다. 산 위에 올라간 무리는 손에 든 몽둥이로 나무들을 "탁탁" 두드리거나 "우우" 소리를 내서 토끼를 몰아 내려간다. 앞다리에 비해 뒷다리가 길어 내려갈 때 제대로 뛰지 못하는 토끼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한 사냥방법이다. 10여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대열을 갖춘 상태로 산 위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토끼를 몰아간다. 산 아래 있던 무리 10여명도 대열을 갖춰서 포위망을 좁혀간다. 갈곳을 잃은 토끼는 몰이꾼들에게 잡히거나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다.
동시다발적이고 입체적 압박이다. 삼성에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는 게 맞다. 그러나 정부가 작정하고 사정기관을 동원해 털려고 들면 먼지 안 나올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정부가 국익과 현실을 무시하거나, 고무줄식 기준으로 삼성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삼성 몰이의 정점을 찍은 이슈는 금융당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주장이다. 과거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해 "문제없다"는 판단을 했다가 정권 교체 후 입장을 바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6년 외부감사와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감리를 받았다. 이 평가를 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심사도 받았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뒤늦게 특별감리를 실시한 후 '고의적 분식회계'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조사 결과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확정되기 전에 외부에 공개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재계에선 "창립 6년 만에 시총 30조원 규모의 신성장 기업을 육성한 삼성에 칭찬을 하지 못할망정 고무줄 잣대로 분식회계의 멍에를 씌우는 일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당국의 원칙도 바뀌면 기업이 어떻게 신사업에 투자를 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까지 할 수 있겠는가"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해 창립 80년을 맞은 삼성은 몰이꾼에게 잡히느냐, 산을 떠나느냐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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