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
파이낸셜뉴스
2018.11.03 06:00
수정 : 2018.11.03 06:00기사원문
지난달 26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대통령궁에서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옛 상관이었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시리세나는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라자팍사 정부의 보건 장관이었다.
같은날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는 자신이 아직 총리라며 시리세나의 해임 조치에 반발했다. 이로써 스리랑카에는 총리만 2명인 사상 초유의 정치적 혼란이 찾아왔다.
시리세나는 눈에 띄는 대외 활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당 내에서 부지런히 위로 올라갔다. 그는 2001년에 SLFP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라자팍사가 2005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농업 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2010년에 보건 장관까지 맡으면서 라자팍사 정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라자팍사는 이후 8년간 대통령직을 연임하면서 북부 타밀 반군을 정복하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가까운 방만한 경제 정책을 벌였다. 그는 특히 요직에 친인척을 배치해 족벌정치라는 비난을 샀고 타밀 반군 진압과정에서 4만명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라자팍스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3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2015년에 조기 대선을 선언했다. 시리세나는 이 과정에서 돌연 SLFP를 탈당해 제 1야당인 통일국민당(UNP)과 손잡고 라자팍사에게 맞섰다. 대선에서 승리한 시리세나는 UNP의 위크레메싱게에게 총리 자리를 주고 다시 SLFP의 당권을 인수했다. 시리세나는 취임에 앞서 "증오로는 증오를 극복할 수 없다"며 라자팍사 세력에게 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시리세나와 위크레메싱게의 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리세나는 취임 직후에 자신의 형제와 사위 등을 국영기업 및 요직에 앉혀 라자팍사와 똑같이 족벌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잘못 끼어들어 빚을 갚지 못해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겨줘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위크레메싱게는 시리세나 정권을 부패 정권으로 몰았다. 시리세나 역시 올해 초 위크레메싱게가 선임했던 전직 중앙은행장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자 이를 UNP의 부패 증거로 꼽았다. 한편 2015년 8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한 라자팍사는 이듬해 스리랑카 인민전선(SLPP)를 창당하고 올해 2월 지방성거에서 자신을 몰아냈던 SLFP와 UNP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3년간의 갈등 끝에 위크레메싱게를 해임한 시리세나는 지난달 28일 위크레메싱게 내각의 장관이 자신의 암살 계획에 연루됐다며 중앙은행장 부패 사건을 다시 언급했다. 그는 현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대안이 라자팍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위크레메싱게는 시리세나가 2015년에 대통령의 총리 해임권을 없애놓고 자신을 해임했다며 여전히 자신이 정당한 총리라고 항변했다.
시리세나가 과거 자신이 등을 돌렸던 라자팍사를 다시 불러들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라자팍사가 SLPP의 인기를 감안했을 때 2020년 총선에서 시리세나의 도움 없이도 총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각종 소송에 얽혀 궁지에 몰린 시리세나가 아직 권력이 있을때 라자팍사에게 점수를 따려 한다며 스리랑카 정치권의 궁색한 거래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과연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모양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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