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청소·맥주병 씻기부터 시작한 고 박용곤 회장

뉴스1       2019.03.04 15:48   수정 : 2019.03.04 21:09기사원문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 뉴스1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공장에서 코카콜라 국내 첫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2010년 10월 선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해군 자원 입대한 참전용사, 산은 입사로 사회생활 첫발

경청 리더십,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두산 기틀 마련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

지난 3일 노환으로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밝혔던 지론이다. 박 명예회장은 '경청의 리더십'을 보여준 '침묵의 거인'이자, 가정과 직장에서 늘 주변을 아울렀던 '큰 어른'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한 참전용사, '남의 밥' 먹으며 사업 배워

박 명예회장은 지난 1932년 두산그룹의 초대회장인 고(故) 박두병 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명예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 참전용사로 활약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직접 실천했다. 통신병으로 활약한 박 명예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공적을 알리지 않아 2014년 4월에야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게 됐다.

군을 제대한 박 명예회장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귀국했다. 하지만 1960년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 명예회장이 산업은행에 입사한 것은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는 선친의 뜻을 따른 것이다. 두산그룹에는 1963년 동양맥주에 입사하면서 발을 들였다.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박 명예회장은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부터 시작해 회사일을 배웠다.

말단에서부터 직원들의 노고를 몸소 느끼며 경영을 배운 박 명예회장은 선진적인 경영에 더불어 직원들 복지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4년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 휴무제도를 시행했으며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 제도'도 도입했다.

◇부단한 혁신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 닦아

박 명예회장은 1995년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주력이었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고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해 33개에 이르는 계열사 수를 20개로 재편했다. 이런 혁신의 노력으로 박 명예회장은 오늘날의 두산그룹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특히 두산은 박 명예회장이 뿌려놓은 개혁의 기틀을 발판으로 2000년대 주력사업이었던 OB맥주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산업재 중심의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두산의 일하는 문화도 박 명예회장의 혁신으로 크게 변화했다. 박 명예회장은 그룹 회장 재임 당시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했다. 앞서 동양맥주에 재직 중이던 1964년에는 당시 국내 기업에서는 생소하던 조사과라는 참모 조직을 신설해 회사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 예산 편성,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며 현대적 경영 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인재' 중시 풍조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침묵과 경청으로 요약된다. 항상 그룹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심에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에도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런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직원들은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었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박 명예회장은 줄곧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평소 "기업은 바로 사람이고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곧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재가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등의 발언을 통해 기업이 인재를 뽑고 길러내야 한다고 힘줘 말해왔다.

박 명예회장의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 등 2남1녀가 있다

◇약력

Δ1932년 서울 출신 Δ경동고 Δ미국 워싱턴 대학 Δ한양식품 대표이사 Δ동양맥주 대표이사 Δ두산산업 대표이사 Δ합동통신사 대표이사 Δ한국신문협회 이사 Δ주한볼리비아 명예영사 Δ두산그룹 회장 Δ한국능률협회 부회장 Δ국제상업회의소(ICC-KNC) 의장 ΔOB베어스 구단주 Δ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Δ주한 아일랜드 명예영사 Δ두산그룹 명예회장 Δ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Δ중앙대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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