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R&D, 패러독스인가 인과응보인가
2019.08.29 17:51
수정 : 2019.08.29 17:51기사원문
필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트남 후에 왕성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개인 차원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 헌신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해서 보면 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은 적지 않은 시간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단기간의 투자로 당장 성과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전문가를 양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축적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R&D는 단기적 투자를 통해 당장의 성과를 얻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전문분야를 깊게 파고들 수 없고 과제 수행을 위한 연구만 하게 된다. 과제 성공률 98%의 신화 아닌 신화가 이런 R&D 시스템에 의해 나온 것이다.
정부 R&D 사업을 지적할 때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투자는 많이 하지만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코리아 R&D 인과응보'라 생각한다. 연구주제는 연구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우리 R&D 시스템은 정부 관료들에 의해 연구과제가 나오고 부처별로 나눠지고 소형화된다.
선진국의 기술을 추격하던 과거에는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과학기술 경쟁력도 높이려면 추격을 넘어서 앞서 나가기 위한 기초원천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R&D 시스템은 장기간 꾸준히 연구해야하는 기초원천연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강국, 퍼스트무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문화, 연구체계에도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표하고 대변해야 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으로서 그동안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반성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었다는 요즘 말처럼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이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구호만 외친다고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지지 않는다. 연구문화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자 혁신을 이루는 길이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