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추억 살린 실버영화관 2천원의 행복
파이낸셜뉴스
2019.12.14 10:00
수정 : 2019.12.14 10:00기사원문
종로구 실버영화관 하루 관객 1400명…"옛 영화가 좋다"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캬 이때는 나도 참 젊었는데"
존 웨인과 잉그리드 버드만, 킴 노박 등 당시 배우 이야기에 흥이 올랐다.
"쫀 웨인 내가 진짜 좋아해. 나는 말이야. 52년도에 해병대에 지원했는데…"
한 노인이 토크의 경로를 벗어나 해병대 '썰'을 풀기 시작했다.
다른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 나도 간첩 참 많이 잡았지" 맞장구쳤다.
사실 영화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의 청춘이고 낭만이다.
추억의 불쏘시개가 된 티켓값은 단돈 2천원. 실버영화관 이야기다.
■ 그 시절 영화에 옛 추억이 새록새록…"남편과 데이트 생각나네"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한 실버영화관 매표소에서 노인들이 티켓을 끊고 있다.
이날 상영 중인 영화는 1956년작 '텍사스 무뢰한'과 1960년작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 '겨울왕국2'일 리는 없다.
티켓값은 55세 이상 2천원이다. 학생과 일반인은 각각 5천원·7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 하루 관객은 약 1400명 수준으로, '벤허'나 '대지' 등 고전 명작이 상영하면 2천명이 넘게 몰리기도 한다.
물론 관객의 99%는 고령층이다. 연인, 친구,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혼자 오는 노인도 있다. 상영관 분위기는 제법 진지해서 소란스럽지 않다.
실버영화관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없다. 츄러스 대신 가래떡과 빈대떡을 파는 정도. 영화관 특유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대화의 주제가 다르다. 엘사와 안나, 디즈니보다는 존 웨인과 잉그리드 버드만, 서부활극이 이야깃거리다. 화제는 벤허에서 세시봉으로, 또 해병대에서 간첩으로 이어진다.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는 노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실버영화관에 온다는 김모씨는 "요새 영화는 우리 세대가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음악을 들어도 자기 세대 음악이 좋지 않나.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 본 영화를 지금 와서 보면 느낌이 다르다"며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신이 난다. 서부 영화 얼마나 좋나. 액션인데"라고 강조했다.
부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편과 나들이 왔다는 최모씨는 "젊어서 데이트할 때 생각나고 좋다"며 "나이 들수록 즐겨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 영화 보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 먹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전했다.
영화 한 편으로 관객이 그 시절을 떠올린다면 영화관의 목적은 어느 정도 충족된 셈이다. 애초에 실버영화관은 상영관 이름을 '추억을 파는 극장'과 '낭만극장'으로 지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가 안 팔려도 좋으니 노인들의 휴게소가 되자는 것이 이 영화관의 취지다.
관계자는 "종로3가에 갈 곳 없이 배회하는 어르신들이 참 많다"라며 "나이 들면 옛것이 좋고 낭만이 그립지 않나. 영화를 안 봐도 좋으니 이곳에 와서 친구도 만나고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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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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