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깟 판결문 소용없다"…양육비 안 주고도 '당당'
뉴스1
2020.01.01 08:03
수정 : 2020.01.01 08:03기사원문
[편집자주]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일까. 이 문제의식으로 설립된 '배드파더스(bad fathers)' 사이트 운영자들이 오는 14일 국민참여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를 계기로 뉴스1은 국내 양육비 미지급 실태와 문제점을 고찰하고자 이 재판의 쟁점과 입법 현황을 살펴본다.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 "이깟 종이 필요 없다." 전 남편은 A씨의 면전에 판결문을 내던졌다. 모든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린 전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아낼 강제수단은 사실상 없었다. 4년간 8건의 소송을 했지만 오랜 싸움 끝에 얻은 결과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판결문이 실상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있던 전 남편. 그는 7년간 밀린 양육비 5000만원 중 단 한달치인 60만원만 지급했다.
올해 4월 발표된 여성가족부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부모 10명 중 7명(73.1%)은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마저도 소송으로 양육비 이행 채권을 인정받은 경우만 집계된 자료로, 사실상 전체 한부모 가정의 미지급 비율은 더욱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육비 미지급 실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세워 여건 개선에 나섰다. 그렇지만 여전히 양육비 미지급 실태는 심각하다. 근본적 조치인 양육비 지급 이행을 위한 강제 제재 수단이 미약한 탓이다.
우리나라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소송과 상담을 지원할 뿐, 해외 유사기관들처럼 양육비를 채무자로부터 강제로 회수해 채권자에게 전달할 권한은 없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아도 실제 양육비 지급이 이행되는 경우는 10명 중 3명꼴에 불과하다. 인력 부족과 복잡한 절차에 소송에 나선 한부모가 여력이 없어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이용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우리나라 양육비 이행 관련 법안의 구속력이 크게 약하다는 점이다. 우리 가사소송법은 ▲양육비직접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1000만원 이하 과태료 ▲30일 내 감치 등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강제력이 부족해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법원이 내린 양육비 지급명령을 지키지 않더라도 가장 무거운 처벌은 감치에 그친다. 이마저도 최소 1년이 걸린다. 그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 가정의 생계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게다가 잠적·위장전입 등으로 6개월간 경찰 눈을 피하기만 하면 감치결정은 무효가 돼 수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더군다나 직접지급명령 등은 양육비 채무자가 급여 소득자거나 본인 명의의 재산이 존재할 경우에나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일부러 본인 재산을 지인 명의로 돌려놓는 등 '꼼수'를 쓰면 손을 쓸 수 없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을 받는 한부모들은 "작정하고 피하면 받아낼 방법이 없다"고 입 모아 말한다.
수년간 여러차례 소송을 거쳐야 하는 괴로움, 이를 견뎌내도 양육비 지급 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에 많은 한부모들이 양육권 채권행사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한부모들이 연대해 법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국회는 거북이걸음이다. 결국 전 배우자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은 "명예훼손"이라며 사이트 운영자들을 고소해 법정에 세웠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한부모 가정의 경제 사정은 소리 없이 빈곤으로 추락하게 된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아동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학대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돼 보다 강력한 법적 제재가 도입돼야 할 것"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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