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물가상승률보다 임금 덜 오른 직종이 '있다' [김기자의 토요일]

      2021.01.30 14:16   수정 : 2021.01.30 14: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이 파업을 코앞에 두고 노사합의에 이른 가운데, 한국 해운계 노동환경이 최근 수년간 급격히 악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정규직 노동자의 힘이 강한 곳도 일부일 뿐, 대부분 업체는 비정규직 선원을 운용하며 노동환경 개선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 업체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외국인 선원 비율을 적극 늘리기까지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우수한 자국 선원 양성을 위해 해양대학교에 더해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오션폴리텍 과정을 운용해온 정부 정책 취지에도 거스르는 현상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고스란히 선원들의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졌다. 본지 조사결과 한국 선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국내 평균임금 인상률은커녕 공공부문 인상률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돈 많이 번다" 옛말? 선원의 속사정
30일 본지가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와 통계청, 노동부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최근 7년 간 한국 선원 평균 임금인상률이 타 직종은 물론 한국은행 기준금리, 연도별 물가상승률 평균치보다 낮았다. 단일 업종 가운데 더 낮은 임금인상률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 7년 간 선원 임금인상률은 1.1%다. 2013년 0.7%가 줄어든 이래, 2014년엔 동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최대 2%에 그쳤다. 항해사와 기관사, 부원 임금 인상률이 모두 대동소이했다.

같은 기간 한국 노동자 평균 임금인상률은 3.75%에 달한다. 임금인상이 더딘 공공부문도 2.68%로, 두 배를 훌쩍 넘겼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 기준금리 평균치 1.82%, 연도별 물가상승률 평균치 1.15%보다도 낮았다.

한국 선원들의 임금이 새삼 주목받은 건 지난해 말 HMM 소속 선원들이 사측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쟁의행위 투표를 진행하면서였다. 당시 전체 조합원 369명 중 97.3%가 찬성표를 던져 파업가능성이 대두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12월 31일 두 번째 협상에서 HMM 노사가 연봉 인상률 2.8%에 극적으로 합의하며 별다른 차질 없이 정상운항이 이뤄지게 됐다.

HMM 노조가 쟁의행위 투표까지 진행한 데는 그간 연봉이 인상 없이 동결돼 온 영향이 크다. 선원은 2015년부터, 육상직은 2013년부터 임금을 동결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16년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가고 수조원대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직원 연봉상승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해 HMM이 6조2000억원대 매출, 8400억원대 영업이익 등 최대 실적을 낸 것으로 추정되며 노조의 반발이 나온 것이다. 당초 HMM은 연봉인상률 1%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없는 선원이 다수··· "문제제기 어려워"
업계에선 HMM 선원들의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글로비스 선박에 선원을 공급하는 지마린서비스 한 선원은 “우린 노조도 없고 임금이 적다고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HMM이니까 파업한다는 말이 나오지 다른 곳은 노조는커녕 돈 올려달라고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근무자들의 여건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나빠졌다. 유코카캐리어스 선박에서 근무하는 한 선원은 “코로나19 이후에 (선원 연속승선기간 제한이 풀리며) 비정규직은 쉬는 기간이 훨씬 길어졌다”며 “정규직은 대명비라고 해서 일정 기간 이상 쉬는 선원에게 회사가 돈을 주는데 비정규직은 그런 게 없으니 무작정 놀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에도 노조를 구성할 수 없는 비정규직 선원들은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일각에선 젊은 선원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선사들이 선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쉬는 동안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해주는 관행이 정착됐다”며 “놀면서도 몇 백 씩 받을 수 있다 보니 정규직을 안 하려는 게 요즘 젊은 선원들 마인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선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국가에 떠넘기는 꼴이다. 어차피 사실상의 휴가기간이 끝나면 다시 해당 선사 선원으로 재계약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선사들이 계약이 해지돼 실업급여를 신청한 비정규직 선원들의 명부를 관리한다는 점은 부정 실업급여수급에 대한 책임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윌헴슨 소속 한 항해사는 “전에 폴라리스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비정규직이라서 말이 많았고 사고 후에 정규직 전환한 걸로 안다”며 “비정규직으로 선원을 운영해야 비용도 아끼는 게 회사 입장이겠지만 유능한 자원들이 선원을 포기하는 이유가 된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해운업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선원의 정규직 비율은 통계에 따라 35% 내외로 잡힌다. 외국인 선원 비율도 계속 늘어 올해 30%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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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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