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아닌 영국 항공모함이 동해까지 온 까닭은

뉴스1       2021.09.02 13:25   수정 : 2021.09.05 15:03기사원문

한영 연합 해상기회훈련이 실시된 지난달 31일 오후 동해 남부 해상에서 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가 항해 체류를 하고 있다. 2021.8.3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한영 연합 해상기회훈련이 실시된 지난달 31일 오후 동해 남부 해상의 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서 F-35B 가 이륙 시연 준비를 하고 있다. 2021.8.3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이 지난달 31일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했다.
선두(사진 왼쪽)에 우리 해군 강습상륙함 '독도함'(위)과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아래)가 보인다. (영국 해군 항모전단장 트위터) © 뉴스1


(해군 제공) © 뉴스1


(동해 남부 해상·서울=뉴스1) 국방부 공동취재단,장용석 기자 = 지난달 31일 오후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태운 우리 해군 헬기가 동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위에 안착했다. 바로 영국 해군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CSG21)은 이날 울산 동방 동해상에서 대형수송함 '독도함' 등 우리 해군 함선들과 함께 Δ인도주의적 차원의 탐색·구조 및 Δ해상 기동군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영연합 해상기회훈련'을 실시했다.

퀸 엘리자베스 함상에선 함재기인 F-35B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가 스키점프대 모양의 활주로를 따라 굉음을 뿜으며 날아올랐고, 곧이어 또 1대의 전투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활주에서 이륙까진 불과 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함 승조원들은 전투기가 이륙할 때 발생하는 강풍에 취재진이 놀라 쓰러질까봐 헬멧과 고글을 나눠주면서 "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순항훈련의 일환으로 올 5월 영국을 출발한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은 그동안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1만마일(약 1만6000㎞) 넘게 항해하면서 지난달 1일 서태평양에 진입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우리나라 근해에 도착했다.

엘리자베스함은 당초 지난달 말 부산에 입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영 양측은 우리나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세, 그리고 영국 항모전단 승조원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등 상황을 감안해 부산 기항 일정을 취소했다.

대신 항모전단에 소속된 '아스튜트'급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트풀'만 지난달 11일 일찌감치 우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도착해 군수품 보급을 받고 승조원들이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퀸 엘리자베스 함상에서 취재진과 만난 스티브 무어하우스 항모전단장(준장)은 "잠수함은 훈련 중반쯤 정비시간을 갖는데 한국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며 "관련 사항은 한국 측과의 협의를 거쳐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과 함께 순항훈련에 나섰지만, 이번 한영훈련엔 불참한 네덜란드 해군 호위함 '에버트센'도 지난달 30일~이달 1일 부산기지에서 군수품을 다시 채운 뒤 출항했다.

잠수함을 포함해 총 10척으로 이뤄진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엔 영국 해군함들 외에도 '에버첸'과 미국 해군 구축함 '설리번'이 함께하고 있다.

영국 항모가 우리나라를 찾은 건 1992년 '인빈시블', 1997년 '일러스트리어스'함의 순항훈련 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2017년 말 취역한 퀸 엘리자베스함은 6만5000톤급으로 현존하는 영국 해군함 가운데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특히 퀸 엘리자베스는 스키점프대 형태의 활주로뿐만 아니라 2개의 함교를 갖고 있어 함교가 1개인 미 해군 항모들과 겉모습이 많이 다르다. 이는 '엔터프라이즈'로 대표되는 미 해군 항모가 원자력추진체계를 갖춘 것과 달리, 퀸 엘리자베스는 디젤엔진 추진체계로 설계하면서 함내에 2개의 기관실을 배치하고 각 기관실의 폐기 배출구를 분리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기관실의 폐기 배출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함교가 나온다는 얘기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퀸 엘리자베스함엔 2개의 함교가 설치된 탓에 자연스레 비행갑판에서 발생하는 난기류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평소엔 전방 함교는 조타실, 후방 함교는 항공기 통제용으로 사용하지만, 유사시 전방 함교가 손상됐을 땐 후방 함교가 예비지휘가 될 수 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 해군이 도입을 추진 중인 3만톤급 경항공모함(CVX)의 함교가 초기 개념도에선 1개였으나, 이후 2개로 바뀐 것도 이 같은 퀸 엘리자베스함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퀸 엘리자베스함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경항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군과 방위산업체 관계자,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들도 '견학'을 다녀갔다고 한다.

영국 측은 우리 해군의 경항모 사업 논의 초기부터 관심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퀸 엘리자베스 항모의 이번 방한엔 양국 해군 간 연합훈련뿐만 아니라 "영국이 자국의 항모 관련 기술을 우리 측에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게 군 안팎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함재기인 F-35B 또한 우리 해군이 도입을 검토 중인 기종이다.

취재진과 함께 엘리자베스함에 오른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동해 앞바다는 약 70년 전 6·25전쟁 당시 영국 군함이 함포지원을 했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해역"이라며 "이런 바다에서 한영 간 교류를 함으로써 앞으로도 양국 간 우애와 파트너십이 더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는 "영국은 한국 해군과 정부가 기획한 경항모 사업에 대해 잘 안다"며 "이번 방문과 행사를 통해 많은 관계자들에게 정보를 전하고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
이번 기회가 한국 해군의 정무적 판단과 결정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국 항모전단의 무어하우스 전단장은 이날 실시된 한영연합훈련 뒤 트위터를 통해 "영국 왕립해군과 대한민국 해군이 중요한 해상훈련을 함께 수행하면서 최고의 상호 운용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은 이번 한영연합훈련에 이어 이달 1일까지 우리 근해에서 머물다 다음 기항지인 일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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