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제도
파이낸셜뉴스
2022.04.03 19:15
수정 : 2022.04.03 19:15기사원문
호주 북동쪽 1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 솔로몬제도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다. 솔로몬제도라는 이름은 성서 속 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기대했던 황금은 없었다. 잊혀진 땅이 됐으나 19세기 영국인 탐험가들에 의해 재발견돼 사탕수수 농장으로 거듭난다. 그림 같은 풍광의 섬이 핏빛으로 물들며 세계 전쟁사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1942년 전투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미드웨이 해전에서 비로소 자존심을 회복한 미국이 5개월 후 일본과 다시 맞붙은 곳이 솔로몬제도 과달카날 섬이었다. 섬은 호주와 미국 본토까지 넘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미군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전투는 처참했고 결과는 일본군의 궤멸이었다. 미국은 이후 태평양 제해권을 거머쥐게 된다.
솔로몬제도는 1978년 독립국이 됐다. 인구 65만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은 1511달러(2020년)로 최빈국에 속한다. 중국이 최근 솔로몬제도에 군 병력과 군함을 파견할 수 있는 안보협정을 타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 인해 호주 등 이웃 국가와 미국의 우려가 격화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솔로몬제도는 중국과 얽히면서 계속 소용돌이다. 머내시 소가바레 총리는 2019년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 일대일로 지원을 받았다. 노골적 친중 행보에 지난해 말 반정부시위가 들끓었다. 중국은 경찰용 방탄복을 지원했고, 미국은 29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설하기로 했다. 가난한 섬나라가 다시 강대국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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