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복과 부패척결 사이
파이낸셜뉴스
2022.10.24 18:33
수정 : 2022.10.24 18:33기사원문
"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발언들로 자승자박의 꼴이 됐다. 최측근들을 겨냥했던 수사의 칼끝은 이제 이 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했던 말들을 부정해야 할 판이니 난감할 테다. 검찰이 가진 증거는 넘치는 듯한데 반증이 없으니 그냥 보복이라고 우겨댈 수밖에 없다.
정치보복과 부패척결의 경계는 모호하다. 부패척결이라는 가면을 쓴 정치보복이 횡행한 탓이다. 선거가 끝나면 이긴 쪽은 선물 보따리를, 진 쪽은 때로는 억울한 벌을 받는 게 상례였다. 조선의 사화(士禍)와 결말이 비슷하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강규형 교수 등 KBS 이사들이 꽹과리 소리를 견디다 못해 쫓겨났다. 방송 장악 의도가 분명했다. 강 교수는 소송에서 이겨 부당행위였다는 판례를 남겼다. 정치보복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윤석열 정권은 이것만큼은 답습하지 않았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인적 구성을 바꾸지 않은 채 보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역대 최초의 방송 불간섭으로 새 정부는 상을 받아야 한다.
정권을 내놓고 나니 주인이 도둑이 되듯 상황이 역전됐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조사하겠다는 감사원을 향해 "무례하다"고 일갈했다. 필시 보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좌파들은 능숙하게 방향 전환을 한 감사원에 '사냥개'란 칭호를 붙였다.
우리 풍토에서 정치보복은 필요악일 수 있다. 수사·감사 기관들의 취약한 독립성 때문이다. 최고 권력 앞에 찍소리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정의의 사도로 환생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정부패는 영원히 묻힌다. 이 대표 측근들의 비행(非行)도 정권이 연장됐더라면 이렇게 드러날 리가 없다. 아무리 '충견'이라 비방해도 검찰이 하는 일 자체는 무조건 보복이 될 수는 없다. 민주적·법적 절차만 지킨다면 말이다.
정치보복과 부패척결의 경계선을 긋자면 실정법 위반 여부다. 위법, 불법의 처벌에는 보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눈앞에 보이는 강도를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법을 어겨 처벌을 받았거나 받는 중이다. 이를 보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 측근 수사가 보복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못한다면 이중 잣대, 내로남불 그 이상이 아니다.
충견과 사냥개는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도 역할을 충실히 했다. 벌써 망각한 모양이다. 문재인의 검찰은 적폐청산의 선봉장 아니었던가. 불의의 처단은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차선의 정의는 될 수 있다. 도둑질하는 주인을 물 수 있는 최고로 정의로운 개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